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야구장이 하나 나온다. 도쿄의 진구 구장이다. 1978년 4월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개막 경기였다. 외야석에서 스물아홉 살의 남자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밤에는 재즈 바를 꾸리는 사람이었다.
야쿠르트의 첫 타자 데이브 힐턴이 공을 때렸다. 깨끗한 2루타였다. 공이 외야로 굴러가는 사이 남자는 한 가지를 알아 버렸다.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알았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적는다.

경기가 끝나고 그는 신주쿠에 들러 원고지와 만년필을 샀다. 가게 문을 닫은 한밤에 부엌 식탁에 앉아 조금씩 썼다. 반년쯤 걸려 원고 한 뭉치가 생겼다. 그런데 읽어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상한 일을 한다. 낡은 올리베티 타자기를 꺼내 첫 부분을 영어로 써 본 것이다. 아는 단어가 많지 않으니 문장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꾸밀 말이 없으니 리듬만 남았다. 그 영어를 다시 일본어로 옮겼다. 그렇게 생긴 문장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썼고 이듬해 그 소설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서툰 외국어가 모국어의 군살을 빼 준 셈이다.
내가 이 대목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2루타가 아니다. 번개 같은 순간은 이 책에서 몇 쪽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거의 전부가 그다음 이야기다. 그리고 그다음은 놀랄 만큼 수수하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나는 막스 베버가 떠오른다. 1917년 11월 베버는 뮌헨의 대학생들 앞에서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강연을 했다. 독일어 베루프(Beruf)는 먹고사는 일이면서 부름을 받은 일이다. 직업이면서 소명이다. 베버는 그 강연에서 좋은 착상은 우리가 원할 때가 아니라 제 마음 내킬 때 온다고 말했다. 소파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느린 오르막길을 걷다가. 다만 책상 앞에서 오래 끙끙댄 사람에게만 온다고 덧붙였다. 하루키의 2루타도 아마 그런 종류였을 것이다. 번개는 한 번 친다. 그다음은 날씨다.
하루키가 이 책에서 가장 공들여 말하는 것도 날씨 쪽이다. 장편소설을 쓸 때 그는 하루에 원고지 스무 장을 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다섯 시간 책상 앞에 앉는다. 더 쓰고 싶은 날에도 스무 장에서 멈춘다. 도무지 써지지 않는 날에도 스무 장까지는 쓴다. 출근 카드를 찍고 스무 장을 쓰고 퇴근 카드를 찍는다. 그는 그 일을 예술가의 일이라기보다 공장의 일처럼 말한다. 한 달이면 육백 장이다. 반년이면 삼천육백 장이 된다.
초고가 끝나면 고쳐 쓰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크게 뜯어고친다. 앞뒤가 맞지 않는 곳을 바로잡고 덜어 내거나 덧붙인다. 다음에는 세부를 고른다. 대화의 결과 문장의 호흡 같은 것들. 마지막에는 작은 나사 몇 개를 조인다. 그러고 나서 원고를 두어 주에서 한 달쯤 묵힌다. 그는 이것을 콘크리트를 굳히는 일에 빗댄다. 양생이라고 부른다. 굳은 뒤에야 금 간 곳이 보인다.
그다음 원고는 첫 독자인 아내에게 간다. 여기서 그에게는 규칙이 하나 있다. 아내가 어느 대목을 지적하면 그 대목은 고친다. 지적에 동의하지 않아도 고친다. 제안한 방향과 다르게 고칠 수는 있다. 그래도 손은 댄다. 누군가 걸려 넘어진 자리에는 대개 돌이 있다는 것이다. 돌의 이름은 틀리게 말했더라도.
그리고 그는 달린다. 하루에 한 시간쯤. 이 책의 한 장은 제목부터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이다. 장편소설은 머리로 쓰는 것 같지만 몇 달 몇 년 같은 집중을 버티려면 먼저 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가의 비결이 결국 체력이라니. 조금 웃음이 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반박할 말이 없다.
책의 첫 장에서 하루키는 소설 한두 편을 쓰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 일을 해낸다. 어려운 것은 그 일을 이십 년 삼십 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소설 쓰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이 서른 몇 해 동안 한 가지 일을 어떻게 지켜 왔는지 보여 주는 책이다. 문학상 이야기도 있고 학교 이야기도 있고 해외에서 처음부터 다시 독자를 만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밑바닥에 깔린 것은 같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분량. 고쳐 쓰기. 달리기.
베버가 말한 소명은 어쩌면 거창한 부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같은 자리에 앉는 일. 번개가 치지 않는 날에도 앉는 일. 부름은 그렇게 앉아 있는 사람에게만 들리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하루에서 스무 장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6
원서 『職業としての小説家』, 2015 · 모두 12장 · ISBN 978-89-7275-7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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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16.
- Haruki Murakami, “The Moment I Became a Novelist”, Wind/Pinball: Two Novels 서문, Knopf, 2015.
-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1917년 뮌헨 강연, 1919년 출간).
Twenty Pages a Day
On Haruki Murakami’s Novelist as a Vocation
In April 1978 a twenty-nine-year-old jazz bar owner watched Dave Hilton hit a double at Jingu Stadium and suddenly knew he could write a novel. That lightning strike takes up only a few pages of Novelist as a Vocation. The rest of the book is about the weather that follows: ten Japanese manuscript pages every morning, no more and no less, three rounds of rewriting, a few weeks of letting the draft cure like concrete, a wife whose every objection earns a rewrite, and an hour of running a day. Max Weber once told students that ideas arrive when they please, but only to those who have labored at the desk. Murakami’s quiet book reads like a novelist’s answer to that lectu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