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어원과 뜻, 동양과 서양, 한국의 ‘철학’
철학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그것이 쓸모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약간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진실은 말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이 학문이 스스로를 어떻게 불러 왔는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다. 이름은 종종 그 이름을 붙인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했는지 알려 준다.
이 글에서는 서양의 필로소피아와 동양의 여러 이름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쩌다 “철학(哲學)”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는지까지 따라가 본다.
세 줄 요약
- 필로소피아는 “지혜를 사랑함”, 지혜를 찾는 사람의 학문이다.
- 동양에는 이름이 없었을 뿐, 같은 물음은 있었다.
- “철학”은 니시 아마네가 만든 번역어로, 근대에 들어왔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물리학자에게 물리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별 망설임 없이 답한다. 철학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는 먼저 질문이 무슨 뜻인지 묻는다. 이것은 철학자가 까다로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이 망설임 자체가 철학이 하는 일을 잘 보여 준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을 다시 묻는 학문이다. 다른 학문은 대개 어떤 전제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출발한다. 철학은 그 전제가 정말 받아들일 만한지를 묻는다. 무엇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아름다운가. 이런 질문에는 실험실이 없다. 가진 도구는 개념을 분명히 하는 일, 근거를 따지는 일, 그리고 자기 생각에 대한 반론을 끝까지 들어 보는 일뿐이다.
서양: 필로소피아, 지혜를 사랑하는 일
필로소피아의 뜻
영어 philosophy는 고대 그리스어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에서 왔다. 앞의 필로(philo-)는 “사랑하다”, 뒤의 소피아(sophia)는 “지혜”라는 뜻이다. 한자로 옮기면 애지(愛智)가 된다.
| 구성 | 그리스어 | 뜻 |
|---|---|---|
| 앞 | philo- (φιλο-) | 사랑하다 |
| 뒤 | sophia (σοφία) | 지혜 |
| 합쳐서 | philosophia | 지혜를 사랑함, 애지(愛智) |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이 이름에서 주목할 점은 철학자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이미 가진 것을 두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것을 잃을까 걱정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그러니 이 이름에는 처음부터 일종의 겸손이 들어 있는 셈이다.
고대에는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이 피타고라스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스스로를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로마의 키케로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이 일화를 전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제자 헤라클레이데스가 쓴 대화편에서 나온 것이고, 그 대화편에는 숨이 멎은 여인을 되살리는 장면도 들어 있었다.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이야기가 조금 지나치게 잘 만들어져 있다. 나는 이 일화를 사실이 아니라 철학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싶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읽는 편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자기 이해를 가장 철저하게 실천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만 다른 사람보다 나을 뿐이라고 여겼고, 아테네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져 그들 역시 모른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것은 친구를 많이 만드는 방법은 아니었고, 실제로 그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철학자는 지혜로운 신과 무지한 사람 사이에 서서, 자신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기에 지혜를 향해 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모든 학문은 한때 철학이었다
오늘날 대학 요람을 펼치면 철학과는 수많은 학과 가운데 하나로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정은 정반대였다. 별의 운동을 묻는 일도, 도형의 성질을 따지는 일도, 좋은 국가를 구상하는 일도 모두 필로소피아였다. 철학은 여러 학문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학문 그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넓은 영토에 처음으로 쓸 만한 지도를 그렸다. 그는 앎을 대략 세 갈래로 나눴다. 있는 것을 그 자체로 알려는 이론적 앎, 잘 행동하고 잘 다스리기 위한 실천적 앎, 무언가를 잘 만들기 위한 제작의 앎이다. 첫째에는 자연학과 수학과 형이상학이, 둘째에는 윤리학과 정치학이, 셋째에는 시학과 수사학이 들어갔다. 오늘날의 물리학과 정치학과 문예 이론이 모두 한 사람의 서재에 함께 꽂혀 있었던 셈이다.
중세의 대학: 철학은 모든 공부의 입구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 학생들은 먼저 교양학부에서 논리학과 자연학, 윤리학 같은 철학 과목을 배웠다. 그다음에야 신학, 법학, 의학이라는 상급 학부로 올라갈 수 있었다. 철학은 모든 전문 공부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이 구조가 남긴 흔적이 지금도 있다. 영어권 대학에서 물리학이든 경제학이든 박사 학위를 PhD(Doctor of Philosophy)라고 부르는 것이다.
근대: 자식들이 하나씩 집을 떠나다
근대에 들어 사정이 바뀌었다. 연구 방법이 정교해지고 실험과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철학의 여러 분야가 하나씩 독립해 나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떠난 자식들이 한동안 어머니의 성을 그대로 쓰고 다녔다는 점이다.
| 학문 | 독립 무렵 | 철학의 흔적 |
|---|---|---|
| 물리학 | 17세기 | 뉴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 |
| 화학 | 18~19세기 | 돌턴 『화학 철학의 새 체계』(1808) |
| 경제학 | 18세기 말 |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 교수였다 |
| 사회학 | 19세기 | 콩트가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붙임 |
| 심리학 | 19세기 말 | 분트, 라이프치히 실험실(1879) |
뉴턴은 자신을 물리학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가 쓴 책의 제목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였고, 그는 스스로를 자연철학자라고 여겼다. 『국부론』(1776)을 쓴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 교수가 아니라 글래스고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였다. “과학자(scientist)”라는 영어 단어가 만들어진 것도 1830년대에 들어서였다. 그전까지 과학을 하는 사람은 그냥 철학자였다.
심리학은 가장 늦게 떠난 자식 가운데 하나다. 마음이 무엇인가는 오랫동안 철학자들의 질문이었지만, 1879년 빌헬름 분트가 라이프치히에 실험실을 열고 마음을 실험으로 재기 시작하면서 심리학은 독자적인 학문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 철학에는 무엇이 남았나
러셀은 이 과정을 두고 흥미로운 관찰을 남겼다. 어떤 주제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주제는 더 이상 철학이라고 불리지 않고 별개의 과학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철학에 남는 것은 아직 확실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뿐이다.
이렇게 보면 철학이 “답을 내놓지 못한다”는 비난은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답을 내놓는 데 성공한 분야는 모두 다른 이름을 달고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철학은 성공할 때마다 자식을 떠나보내고, 가장 어려운 질문과 함께 집에 남는 학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 곧 무엇이 옳은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이 아름다운가는 어떤 실험실도 대신 맡아 주지 않는다.
동양: 이름은 달랐지만 같은 물음
19세기 이전의 동아시아에는 “철학”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이것을 두고 동양에는 철학이 없었다고 결론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추론은 “고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의 집에는 고양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세계의 근본을 묻고, 인간의 본성을 따지고, 좋은 삶과 좋은 정치를 논하는 전통은 다른 이름으로 오래 이어져 왔다.
| 이름 | 뜻 | 물은 것 |
|---|---|---|
| 도학(道學) | 도(道)를 배움 | 사람이 걸어야 할 길 |
| 이학(理學) | 이치(理)를 밝힘 | 만물에 깃든 원리 |
| 성리학(性理學) | 본성과 이치 | 인간의 본성과 마음 |
| 불교·도가 | 공(空)과 무(無) | 나와 세계의 실상 |
조선의 이황과 이이가 벌인 사단칠정 논쟁은 인간의 도덕적 감정과 일반적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것을 철학 논쟁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인도에서는 철학 체계를 다르샤나(darśana)라고 불렀다. “보다”라는 뜻의 말에서 온 이름이다. 서양은 철학을 사랑이라고 불렀고 인도는 봄이라고 불렀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사랑하지 않는 것은 오래 보지 않고, 오래 보지 않은 것은 사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두 이름은 생각보다 가까울지도 모른다.
“철학”이라는 말은 어떻게 태어났나
니시 아마네의 번역: 희현학에서 철학으로
“철학(哲學)”은 19세기 일본의 학자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가 philosophy를 옮기면서 만든 말이다. 네덜란드에서 서양 학문을 공부한 그는 이 낯선 학문에 맞는 이름을 찾느라 번역어를 여러 번 바꿨다. 새로운 것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아이 이름을 지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 번역어 | 뜻 | 배경 |
|---|---|---|
| 희현학(希賢學) | 현명함을 바라는 학문 | 주돈이 『통서』의 “士希賢” |
| 희철학(希哲學) | 슬기로움을 바라는 학문 | 유교색이 강한 賢을 哲로 |
| 철학(哲學) | 슬기로움의 학문 | 希를 뺌, 『백일신론』(1874) |
처음 고른 “현(賢)”은 유학에서 성인 다음가는 현인을 가리키는 말이라, 서양의 학문에 붙이기에는 유교의 색이 너무 짙었다. 그래서 더 넓게 “밝고 슬기롭다”는 뜻의 “철(哲)”로 바꾸었고, 마지막에는 “바랄 희(希)”까지 떼어 내 지금의 “철학”이 되었다.
번역에서 사라진 한 글자
번역자는 때로 원문에 없는 것을 더하고, 때로 원문에 있는 것을 빠뜨린다. 니시 아마네의 경우는 뒤쪽이다. “희(希)”를 빼면서 필로소피아의 “필로”, 곧 사랑하고 바란다는 뜻이 사라졌다. “지혜를 향해 가는 학문”이 “지혜로운 학문”이 된 것이다.
이 작은 생략의 결과는 작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철학”이라는 말은 어쩐지 이미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들의 학문처럼 들린다. 원래의 이름대로라면 철학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글자가 빠지면서 철학은 조금 더 근엄해졌고, 그만큼 덜 정직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은 왜 “철학”이라고 부르게 되었나
한국에서 “철학”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은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른바 근대 전환기의 일이다.
| 시기 | 인물·문헌 | 내용 |
|---|---|---|
| 1895 | 유길준 『서유견문』 | 필로소피아를 “지혜를 애호하는 학문”으로 풀이 |
| 1900년대 | 이정직 『연석산방고』 | 칸트 철학 소개(강씨철학설대략) |
| 1912 | 이인재 『고대희랍철학고변』 | 고대 그리스 철학 소개 |
| 1910~20년대 | 일본 유학생·언론 | “철학”이 표준 용어로 정착 |
왜 하필 이 말이었는가. 이유는 대단히 철학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언어 현상이 그렇듯, 먼저 도착해서 널리 쓰인 말이 이긴 것이다. 조금 더 풀어 보면 세 가지 사정이 있었다.
- 번역의 길이 일본을 거쳤다. 근대의 서양 학문은 상당 부분 일본어 번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사회”, “개인”, “자유”, “권리” 같은 말도 같은 길을 걸었다.
- 한자를 함께 쓰는 문화권이었다. 한자로 만든 번역어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읽는 소리만 달랐을 뿐 뜻은 그대로 통했다. 새 말을 만드는 것보다 이미 있는 말을 쓰는 편이 빨랐다.
- 학교와 신문이 표준을 정했다. 신문과 잡지, 새로 생긴 학교의 교과목 이름에 “철학”이 쓰이면서, “애지학” 같은 다른 번역어는 설 자리를 잃었다.
중국도 비슷한 시기에 일본을 거쳐 “哲學(zhéxué)”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오늘날 세 나라는 발음은 달라도 같은 한자어로 이 학문을 부른다. 좀처럼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철학자들이 적어도 이름 하나에는 합의한 셈이다.
철학은 무엇을 묻는가
오늘날 철학은 대개 다음과 같은 분야로 나뉜다. 분야는 달라도 하는 일은 같다. 당연해 보이는 것을 한 번 더 묻는 일이다.
| 분야 | 대표 질문 |
|---|---|
| 형이상학 | 무엇이 진짜로 존재하는가? |
| 인식론 |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 논리학 | 무엇이 올바른 추론인가? |
| 윤리학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 정치철학 |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 |
| 미학 |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
필로렌즈는 이 가운데 정치철학과 미학을 중심으로, 뉴스와 그림과 일상의 장면을 철학의 렌즈로 읽어 보려 한다. 예를 들어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흥미로운 답 하나를 내놓았다.
그래서, 철학은 쓸모가 있는가
처음의 비판으로 돌아가 보자. 철학이 쓸모없다는 말은, 철학이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라면 대체로 옳다. 러셀은 1912년에 펴낸 『철학의 문제들』의 마지막 장에서 바로 이 점을 뒤집었다. 철학의 가치는 확실한 답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불확실성에 있다는 것이다. 철학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려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익숙한 생각이라는 좁은 방의 문을 조금 열어 준다.
확실한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실망스러운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일이다. 이미 가진 사람은 사랑할 필요가 없다.
자주 묻는 질문
철학의 어원은 무엇인가요?
서양의 philosophy는 그리스어 필로소피아에서 왔고, “지혜(sophia)를 사랑함(philo)”이라는 뜻이다. 한자어 “철학(哲學)”은 19세기 일본의 니시 아마네가 만든 번역어로, “밝을 철(哲)”과 “배울 학(學)”을 합한 말이다.
동양에도 철학이 있었나요?
“철학”이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도학·이학·성리학, 불교와 도가의 사상, 인도의 다르샤나처럼 세계와 인간의 근본을 묻는 전통은 분명히 있었다. 오늘날 이를 “동양철학”이라고 부른다.
왜 철학을 “모든 학문의 어머니”라고 부르나요?
근대 이전에는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탐구하는 거의 모든 학문이 철학에 속했기 때문이다. 물리학, 경제학, 심리학 같은 학문은 17세기 이후 연구 방법이 정교해지면서 차례로 철학에서 독립했다.
“철학”이라는 번역은 정확한가요?
대체로 정확하지만 한 가지가 빠졌다. 원래 말에 있던 “사랑하다, 바라다”라는 뜻이다. 니시 아마네의 초기 번역어 “희철학(希哲學)”에는 이 뜻이 남아 있었지만, 줄여 부르면서 사라졌다.
함께 읽을 책
- 『철학의 문제들』 버트런드 러셀: 철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가장 평이한 말로 설명한 입문서다. 마지막 장 “철학의 가치”만 읽어도 좋다. 책 보기
- 『소크라테스의 변론』 플라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법정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보여 주는 짧은 고전이다. 책 보기
- 『번역어 성립 사정』 야나부 아키라: “사회”, “개인”, “자유” 같은 근대 번역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다룬 책이다. 책 보기
참고문헌
- Bertrand Russell, The Problems of Philosophy, 1912, 15장 “The Value of Philosophy”
- Cicero, Tusculan Disputations V.3.8–9;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서문 및 8권 — 피타고라스 일화의 고대 전거
- Carl Huffman, “Pythagoras”,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일화의 출처(헤라클레이데스)와 역사성에 대한 평가
- 플라톤, 『향연』 203e–204b — 철학자를 지혜와 무지의 중간에 선 존재로 그린 대목
- “철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어원, 유길준·이정직·이인재의 소개
- “[근대어 산책] 철학(哲學)”, 자유문고 칼럼 — 니시 아마네의 번역 과정과 전파 경로
- 니시 아마네, 『백일신론(百一新論)』, 1874
What Is Philosophy?
The Word in the West, the East and Korea
The commonest thing said about philosophy is that it is useless. There is some truth in this, though not the truth its critics intend. The word itself is instructive. Greek philosophia joins philo-, love, and sophia, wisdom. A philosopher, on this account, is not a person who has wisdom but one who wants it, which is a more modest claim and, on the whole, a more accurate one. Ancient writers credited Pythagoras with coining the word; the story comes from a dialogue by Heraclides of Pontus that also featured a woman restored to life, and may be treated with corresponding caution.
For most of its history “philosophy” meant knowledge in general. Newton called his great work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1687); Adam Smith held a chair of moral philosophy; the word “scientist” was not coined until the 1830s. As methods of measurement and experiment matured, physics, economics, sociology and psychology left home one by one. Russell observed that as soon as definite knowledge about a subject becomes possible, it ceases to be called philosophy. What remains are the questions no laboratory will take off our hands.
East Asia had no word for philosophy before the nineteenth century, but it would be odd to conclude that it had no philosophy, much as it would be odd to say a house has no cat because its owner lacks the word. The Learning of the Way, the Learning of Principle and Neo-Confucianism asked the same questions under other names. In India, philosophical systems were called darśana, from a root meaning “to see”.
The modern term 哲學 (cheolhak in Korean) was coined by the Japanese scholar Nishi Amane (1829–1897), who moved from 希賢學 to 希哲學, “the learning that aspires to wisdom”, before shortening it to 哲學 by 1874. In dropping 希, aspiration, he dropped the “love” as well. The word reached Korea around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through Yu Kil-chun, Yi Jeong-jik, Yi In-jae and students returning from Japan, and prevailed, as words usually do, by arriving first and being used most.
FAQ
Is philosophy useless? If useful means giving certain answers, largely yes. Russell argued in The Problems of Philosophy (1912) that its value lies precisely in its uncertainty, which frees the mind from the narrow room of the familiar.
Is 哲學 an accurate translation? Mostly, but it lost the sense of aspiration preserved in Nishi’s earlier 希哲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