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균 『사진철학을 만나다』
『사진철학을 만나다』의 표지에는 숲이 하나 있다. 그런데 계절이 하나가 아니다. 왼쪽은 눈 덮인 겨울이고 가운데는 짙은 여름이며 오른쪽으로 갈수록 가을빛이 섞인다.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세로로 잘라 이어 붙인 것이다. 사진은 원래 한순간을 잘라 내는 기술이다. 이 표지는 일 년을 한 장에 넣었다.
출판사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라슬로 모호이너지의 말을 맨 앞에 놓았다. 1928년 바우하우스의 잡지에서 그는 앞으로의 문맹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백 년쯤 지난 지금 그 말은 예언이라기보다 일기 예보처럼 들린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장의 사진을 본다. 그런데 사진을 읽는 법을 배운 적은 거의 없다.
지은이 백승균은 튀빙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계명대학교 명예교수다. 대한철학회는 그의 호를 따서 운제철학상을 준다. 2014년 북길드에서 나온 이 책은 그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로 뽑혔다. 판권면에 적힌 영어 제목은 Photography Meets Philosophy다. 사진이 철학을 만난다. 뒤표지에는 한 줄이 더 있다. 사진이 철학을 만나고 우리가 사진철학을 만날 때.
책은 먼저 사진을 세 가지로 나눈다. 우리가 날마다 쉽게 찍고 넘기는 사실의 사진. 죽은 아들의 사진을 하염없이 쓰다듬는 어머니를 찍은 의미의 사진. 오래 노출하거나 여러 번 겹쳐 찍어 작가의 생각을 전하는 의식의 사진. 같은 기계로 찍어도 사진은 이렇게 다른 일을 한다. 무엇을 찍었느냐보다 무엇을 보았느냐가 사진을 가른다.

1838년 루이 다게르가 파리의 탕플 대로를 찍었다. 낮이었고 길은 붐볐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 속 거리는 텅 비어 있다. 노출이 몇 분씩 걸려서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단 한 사람이다. 길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느라 가만히 서 있던 남자. 사진에 처음 찍힌 사람은 멈춰 선 사람이었다. 책이 말하는 의식의 사진을 떠올리면 이 우연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오래 머문 것만 남는다.
둘째 부분은 발터 벤야민이다. 그의 에세이 「사진의 작은 역사」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따라 예술의 중심이 회화에서 사진으로 옮겨 가는 과정을 짚는다. 벤야민은 지금 여기 단 한 번 있는 것에서 풍기는 기운을 아우라라고 불렀고 복제가 그것을 흩어 버린다고 보았다.
책의 한가운데는 빌렘 플루서다. 이 책은 플루서의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를 사진철학에서 아직 견줄 데가 없는 성과로 본다. 백승균은 그 책의 장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며 그림과 사진기와 사진 찍기와 사진의 배포와 수용을 하나씩 읽는다. 출판사가 미리 공개한 대목에서 그는 카메라가 자동화될수록 사진 찍는 사람은 기계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세상을 본다고 말한다. 셔터는 끝없이 눌리고 같은 것이 끝없이 되돌아온다. 그는 여기서 니체의 영겁회귀를 떠올린다. 그런 앨범에는 사람의 체험 대신 기계의 가능성만 남는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는 말이 있다. 잉여사진. 날마다 새 사진이 쌓이고 남아도는 사진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책은 그런 사진들을 남아도는 농산물에 빗댄다. 찍히기만 하고 한 번도 보이지 않는 사진. 우리 휴대전화 사진첩의 대부분이 거기에 속할 것이다. 찍는 데 일 초가 걸린 사진을 다시 보는 데는 일 초도 쓰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은 플라톤과 데카르트에서 야스퍼스와 하이데거까지 열 명의 철학자를 불러 플루서 곁에 세운다. 플라톤은 동굴 벽의 그림자를 가상이라 했고 이데아를 참된 현실이라 했다. 이제는 화면 속 가상이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고 책은 말한다. 그러니 사진을 묻는 일은 결국 사람을 묻는 일이 된다. 사진이 무엇인지 묻기 전에 사람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 같은 지은이의 『삶의 철학으로서 인문학』이 던진 물음이 여기서 렌즈를 바꿔 끼우고 다시 나타난다.
필로렌즈라는 이름에도 렌즈가 들어 있다. 렌즈는 많이 담으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에 초점을 맞추려고 있는 것이다.
오늘 찍은 사진 가운데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몇 장일까.

『사진철학을 만나다』 백승균 지음, 북길드, 2014
영어 제목 Photography Meets Philosophy · 256쪽 · ISBN 978-89-969374-1-8 · 2014 우수출판콘텐츠(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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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백승균, 『사진철학을 만나다』, 북길드, 2014.
- 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Für eine Philosophie der Fotografie, 1983).
-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1931);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1936).
- 라슬로 모호이너지, bauhaus 잡지(1928) — 출판사 책 소개에서 재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