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

삼권분립 표지(청와대·국회·대법원)

대법관 재제청 논란으로 다시 읽는 권력의 나눔

대표 이미지(크롭·합성): 청와대 — eimoberg, CC BY 2.0 · 국회의사당 — frakorea, CC BY 2.0 · 대법원 — 서울연구원, CC BY 4.0 · 모두 위키미디어 공용

요즘 신문을 펼치면 서로 반대편에 선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한쪽은 상대가 삼권분립을 파괴한다고 말하고, 다른 쪽도 똑같이 말한다. 같은 원리를 두고 이렇게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다면, 원리가 모호하거나 원리를 읽는 눈이 다르거나 둘 중 하나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삼권분립은 국가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기관에 맡기고, 서로를 멈춰 세우게 하는 원리다. 이 글에서는 그 원리가 어디서 왔는지 따라가 본 뒤, 지금 벌어지는 대법관 재제청 논란에 양쪽이 이 원리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 나란히 놓아 본다. 양쪽의 논리를 먼저 공정하게 소개하고, 필로렌즈의 시선은 끝에 따로 밝힌다.

세 줄 요약

  • 삼권분립은 권력이 권력을 멈추게 하는 장치다.
  • 몽테스키외가 체계화하고, 미국 헌법이 제도로 만들었다.
  • 지금의 논란은 선출된 권력과 사법 독립의 충돌이다.

삼권분립이란: 한 문장으로

한 문장으로 말하면, 삼권분립은 법을 만드는 힘, 법을 집행하는 힘, 법으로 판단하는 힘을 한 손에 쥐여 주지 않는 원리다. 이 원리는 인간이 착하다는 믿음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인간은 대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고 싶어 한다는 관찰에서 출발한다. 이 관찰은 불행히도 지금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러므로 삼권분립은 선한 통치자를 기다리는 제도가 아니다. 통치자가 선하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제도다. 좋은 날씨에 우산이 쓸모없어 보이는 것처럼, 권력이 온순할 때 삼권분립은 번거로운 절차로만 보인다.

삼권분립의 역사

권력을 나누자는 생각은 오래되었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가 된 것은 18세기의 일이다.

시기 인물·문서 핵심 생각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국가에는 심의·관직·재판의 세 부분이 있다
기원전 2세기 폴리비오스 로마는 왕정·귀족정·민주정을 섞어 오래갔다
1689년 로크 『통치론』 입법권과 집행권을 나누되 입법이 최고다
1748년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을 분리해야 자유가 있다
1787년 미국 헌법 삼권을 세 기관에 나누고 서로 견제하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4권에서 모든 정체에 세 부분이 있다고 보았다. 다만 그것은 권력을 나누자는 주장이라기보다 국가의 기능을 분류한 것이었다. 폴리비오스는 로마가 강했던 이유를 섞인 정체에서 찾았다. 집정관, 원로원, 민회가 서로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 존 로크는 『통치론』(제2론 12장)에서 법을 만드는 권력과 법을 집행하는 권력을 나누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이 그 법을 집행까지 하면, 자기에게는 법을 적용하지 않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크에게 사법은 아직 독립된 권력이 아니었다.

사법을 세 번째 기둥으로 세운 사람이 몽테스키외다. 그는 『법의 정신』(1748) 11권에서 영국 헌정을 분석하며, 재판하는 권력이 입법과 행정에서 분리되지 않으면 자유는 없다고 썼다. 그리고 같은 권의 4장에 이 원리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을 남겼다.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사물의 배치를 통해 권력이 권력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몽테스키외가 사람의 덕이 아니라 “사물의 배치”에 기대를 건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았고, 대신 구조를 믿었다.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 것: 견제와 균형

삼권분립이라는 말은 권력을 칸막이로 나누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칸막이만으로는 부족하다. 칸막이 안에서 각자 무엇을 하든 서로 간섭할 수 없다면, 세 개의 작은 독재가 생길 뿐이다.

미국 헌법을 설계한 제임스 매디슨은 이 점을 잘 알았다. 그는 『페더럴리스트』 47편에서 입법·행정·사법의 모든 권력이 한 손에 모이는 것을 폭정의 정의 그 자체라고 불렀다. 그리고 51편에서 해법을 내놓았다. 야심에는 야심으로 맞서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기관이 다른 기관의 일에 조금씩 손을 걸치게 하면, 누구도 혼자 멀리 가지 못한다.

구분 분립(나눔) 견제(걸침)
질문 누가 어떤 권력을 갖는가 누가 누구를 멈출 수 있는가
예시 국회는 입법, 법원은 재판 대통령 거부권, 국회의 임명 동의
위험 각 기관의 고립과 독주 기관끼리의 끝없는 교착

그러니 삼권분립에는 처음부터 긴장이 들어 있다. 나누되 걸쳐 있어야 하고, 걸쳐 있되 삼키면 안 된다. 어디까지가 견제이고 어디부터가 침범인지는 헌법 문장이 모두 정해 주지 않는다. 오늘의 논란도 바로 이 틈에서 생겼다.

한국 헌법 속 삼권분립

대한민국 헌법에는 “삼권분립”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세 권력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조문으로 나누어 적어 두었다.

조항 내용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66조 ④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101조 ①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제104조 ②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 국회 동의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마지막 조항이 흥미롭다. 대법관 한 사람을 세우는 데 세 기관이 모두 손을 댄다.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미국 헌법에서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동의한다. 한국 헌법은 여기에 사법부 수장의 제청을 하나 더 얹었다. 견제의 고리가 하나 더 있는 셈이고, 해석이 갈릴 자리도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오늘의 논란: 대법관 재제청

사실관계부터 적는다. 아래는 전국 일간지 보도(2026년 8월 28일~9월 22일)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 8월 28일: 청와대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했다. 제청 직전 법원행정처가 기존 추천 후보자들에게 추천 재진행을 타진한 점을 들어 절차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 9월 22일: 조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청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며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 같은 날: 청와대는 이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라고 비판했고, 대법관 공백이 길어져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가 사법부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삼권분립 파괴라고 비판했다.

양쪽의 논리를 가능한 한 가장 강한 형태로 나란히 놓아 보면 다음과 같다.

쟁점 청와대·여권의 읽기 대법원장·야권의 읽기
제청의 무게 제청은 임명의 전 단계일 뿐이다 제청은 헌법이 준 고유 권한이다
재제청 요구 임명 거부 뒤의 자연스러운 후속 절차 헌법에 없는 요구, 근거도 없다
국회 동의안 임명하지 않을 후보를 보낼 이유 없다 국회의 동의권 행사를 막는 일이다
정당성의 뿌리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임명권 선거에서 떨어져 있는 사법의 독립
상대에 대한 우려 대법원장이 사실상 임명권을 쥔다 대통령이 대법관을 골라 쓴다

흥미로운 것은 양쪽 모두 삼권분립을 근거로 든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제청권이 임명권을 누르면 권력의 균형이 깨진다고 말하고, 대법원장과 야권은 임명권이 제청권을 누르면 사법의 독립이 깨진다고 말한다. 두 주장은 같은 저울의 서로 다른 접시를 가리키고 있다.

신문은 어떻게 읽었나: 세 갈래의 사설

같은 헌법 조문을 두고 전국 일간지의 사설도 뚜렷하게 갈렸다. 9월 23일 자 사설들을 성향별로 나란히 놓으면 이렇다.

신문 핵심 주장 무게를 둔 가치
조선일보 임명 동의 전 재제청 요구는 제청권 침해 사법부 독립
한겨레·경향 제청권 절대화는 임명권을 형식으로 만든다 선출 권력의 정당성
중앙·동아·한국 양측 모두 책임, 공백의 피해는 국민 몫 제도의 작동과 타협

제청권이 먼저다: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헌법의 순서를 강조했다.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은 동의안을 국회로 보내고, 임명권은 마지막 단계에서 행사하는 것이 헌법의 취지라는 것이다. 동의 절차도 거치기 전에 재제청을 요구한 것은 제청권을 “깔아뭉갠” 일이며, 제청권은 사법부 독립의 핵심 조항이어서 대통령의 임명권에 귀속될 수 없다고 보았다.

임명권도 실질이다: 한겨레·경향신문

한겨레는 대법원 구성이 대통령의 임명으로 완성된다고 보았다. 임명권에 실질적 판단 권한이 없다면 헌법은 “임명하여야 한다”고 적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경향신문은 대법원장의 논리대로라면 국회는 대법원장이 내민 선택지에 찬반만 하고 대통령의 임명권은 유명무실해진다고 비판했고, 재제청을 거부한 방식도 정치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둘 다 멈춰라: 중앙·동아·한국일보

중앙일보는 갈등이 여기까지 온 데 양측 모두 책임이 있다고 보고, 청와대가 특정 후보를 고집하지 말고 새 추천 절차나 추가 협의 같은 출구를 찾으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법관 한 명이 한 해 약 4,600건을 처리한다는 사법연감 수치를 들어 공백의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경고했다. 한국일보는 제청·동의·임명의 절차 자체가 삼권분립에 대한 서로의 존중을 전제로 한다고 짚었다.

세 갈래를 겹쳐 보면 재미있는 점이 보인다. 앞의 두 갈래는 “누구의 권한이 더 무거운가”를 묻고, 세 번째 갈래는 “그 질문을 계속 묻는 동안 누가 비용을 치르는가”를 묻는다. 이 차이는 글 끝에서 다시 다룬다.

두 원리가 부딪칠 때

이 논란 밑에는 민주주의가 오래 안고 온 질문이 하나 있다. 선거로 뽑히지 않은 사람들이 선거로 뽑힌 사람들을 막아도 되는가. 미국의 법학자 알렉산더 비켈은 이것을 “반다수결의 난제”라고 불렀다. 법원이 선출된 권력의 결정을 뒤집을 때마다 이 질문이 되살아난다.

한쪽 저울에는 민주적 정당성이 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뜻은 어디로 흐르는가. 다른 쪽 저울에는 사법의 독립이 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페더럴리스트』 78편에서 사법부를 가장 덜 위험한 부서라고 불렀다. 칼도 지갑도 없고, 힘도 의지도 없이 오직 판단만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부는 다른 권력이 마음먹으면 가장 쉽게 휘는 부서이기도 하다.

현대 정치학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탠다. 삼권분립을 설계한 사람들은 정당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릴 레빈슨과 리처드 필데스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같은 정당이 쥐면 권력은 기관이 아니라 정당을 따라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견제의 선은 기관 사이가 아니라 여당과 야당 사이에 그어진다. 오늘의 논란에서도 각 기관의 주장이 정당의 주장과 겹쳐 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판단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져 볼 만한 질문이 있다.

  • 지금 내 편이 쥔 권한을, 반대편이 쥐어도 나는 같은 해석을 할 것인가?
  • 이 해석이 굳어지면, 10년 뒤 어떤 대통령과 어떤 대법원장에게 어떤 힘이 생기는가?
  • 절차의 공정성과 공백의 비용 가운데 무엇을 더 무겁게 볼 것인가?

필로렌즈의 시선: 제도는 사람보다 오래 산다

여기서부터는 필자의 견해다. 필로렌즈는 이 문제를 보수의 오래된 직관으로 읽는다. 권력을 쥔 사람의 선의보다 권력을 묶어 두는 절차를 믿는다는 직관이다. 몽테스키외가 사람의 덕 대신 “사물의 배치”에 기대를 건 것도, 매디슨이 천사가 아닌 인간을 전제로 헌법을 짠 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이 눈으로 보면 헌법 제104조의 순서는 가볍지 않다. 제청, 동의, 임명. 대통령에게는 임명하지 않을 권한이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은 국회의 동의를 거친 뒤 마지막 단계에서 쓰는 것이 조문의 순서에 맞다. 동의안을 보내기도 전에 다른 이름을 요구하는 관행이 굳어지면, 앞으로 어느 진영의 대통령이든 대법관을 사실상 직접 고를 수 있게 된다. 위의 첫 번째 질문을 여기에 대 보면, 이 선례를 반기기는 어렵다.

다만 상식은 한쪽 편만 들지 않는다. 법원행정처가 추천 재진행을 타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대법원도 국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반년 넘게 비어 있는 자리의 비용도 실재한다. 헌법의 순서를 지키되, 새 추천 절차든 추가 협의든 출구를 찾는 것. 필로렌즈가 보기에 그것이 사법의 독립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함께 지키는 길이다. 물론 독자는 다르게 판단할 수 있고, 그래야 이 글이 쓸모가 있다.

철학이 당연한 것을 다시 묻는 일이라면, 지금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당연한 것은 아마 이 조문 한 줄일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삼권분립은 누가 처음 주장했나요?

권력을 나누자는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로크에게도 있었지만, 입법·행정·사법의 세 권력을 분리해야 한다는 이론을 체계화한 사람은 몽테스키외다. 그의 『법의 정신』(1748)이 미국 헌법 설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은 같은 말인가요?

가깝지만 같지 않다. 삼권분립은 권력을 나누는 것이고, 견제와 균형은 나뉜 권력이 서로를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나 국회의 임명 동의권이 견제의 예다.

대법관은 어떻게 임명되나요?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라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가 동의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번 논란은 이 세 단계 가운데 제청과 임명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벌어졌다.

함께 읽을 책

  • 『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삼권분립의 원전이다. 11권 6장 “영국의 헌정”만 먼저 읽어도 좋다. 책 보기
  • 『페더럴리스트』 해밀턴·매디슨·제이: 삼권분립이 실제 헌법이 되는 과정의 논쟁이다. 47, 51, 78편을 권한다. 책 보기
  • 『통치론』 존 로크: 권력을 나누자는 근대적 생각의 출발점이다. 책 보기

참고문헌

  • 대한민국헌법 제40조, 제66조, 제101조, 제103조, 제104조 — 국가법령정보센터
  • Montesquieu, De l’esprit des lois, 1748, XI권 4장·6장
  • John Locke, Second Treatise of Government, 1689, 12장
  • Aristotle, Politics, IV권 14장; Polybius, Histories, VI권
  • Hamilton·Madison·Jay, The Federalist Papers, 47·51·78편, 1787–1788
  • Alexander Bickel, The Least Dangerous Branch, 1962
  • Daryl Levinson & Richard Pildes, “Separation of Parties, Not Powers”, Harvard Law Review 119, 2006
  • “Montesquieu”,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아시아경제, 「靑,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 제청 반려…대법원장에 ‘재제청’ 요청」, 2026.8.28
  • 서울신문, 「조희대, 대법관 재제청 거부… 靑 “대통령 임명권 무력화”」, 2026.9.23 1면
  • 서울경제, 「조희대, 재제청 거부…靑 “대통령 임명권 무력화”」, 2026.9.22
  • 파이낸셜뉴스(연합뉴스), 「국힘, 靑 ‘曺 재제청 거부’ 비판하자 “삼권분립 부정·파괴 책동”」, 2026.9.22
  • 세계일보, 「위기의 삼권분립」, 2026.9.22
  • 대표 이미지(크롭·합성): eimoberg, 「Korea-Seoul-Cheongwadae-Blue.House-Bukhansan-02」, CC BY 2.0 / frakorea, 「Seoul-National.Assembly-01」, CC BY 2.0 / 서울연구원, 「Supreme Court of Korea (2020)」, CC BY 4.0 — 위키미디어 공용
  • 조선일보·한겨레·경향신문·중앙일보·동아일보·한국일보 사설, 2026.9.23 — 오마이뉴스, 「보수·진보 언론, ‘대법관 재제청 거부’ 두고 정반대 평가」(2026.9.23) 정리에서 재인용

필로렌즈 편집자
일상에 깃든 존재를, 조금 더 존재답게. 철학의 렌즈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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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aration of Powers

Korea’s Supreme Court Nomination Dispute Through an Old Idea

Korean newspapers this month offer a curious spectacle: two parties to a quarrel accusing each other of the same offence, namely destroying the separation of powers. When one principle yields opposite conclusions, either the principle is vague or its readers are. Probably both.

The idea is old. Aristotle divided the state into deliberative, magisterial and judicial parts; Polybius credited Rome’s durability to its mixed constitution; Locke separated legislative from executive power in his Second Treatise (1689). It was Montesquieu, in The Spirit of the Laws (1748), who made the judiciary a third pillar and put the whole doctrine in one line: to prevent the abuse of power, power must be made to check power by the arrangement of things. He trusted structure rather than virtue, which was prudent. Madison turned this into a constitution. Concentrating all powers in the same hands, he wrote in Federalist 47, is the very definition of tyranny; in No. 51, ambition must be made to counteract ambition.

Korea’s Constitution never uses the phrase, but Article 104(2) gives a Supreme Court justice three parents: the Chief Justice recommends, the National Assembly consents, the President appoints. On 28 August 2026 the presidential office declined to send Justice-nominee Son Bong-ki’s confirmation to the Assembly and asked the Chief Justice to recommend again, citing procedural fairness. On 22 September Chief Justice Cho Hee-dae refused, saying no constitutional ground had been given. The presidential office replied that treating a recommendation as binding would nullify the appointing power of an elected president; the opposition replied that demanding re-recommendation tramples judicial and legislative prerogatives.

Beneath the dispute lies what Alexander Bickel called the counter-majoritarian difficulty: democratic legitimacy on one side of the scale, judicial independence on the other. Hamilton called the judiciary the least dangerous branch, having neither sword nor purse, and for that very reason the easiest to bend. Korea’s national dailies split the same way: the conservative Chosun Ilbo defended the recommendation power as the core of judicial independence; the progressive Hankyoreh and Kyunghyang argued that an appointing power without real judgment would be no power at all; JoongAng, Dong-A and Hankook blamed both sides and counted the cost of a vacant bench. PhiloLens reads the dispute with an old conservative instinct: trust the procedure that binds power, not the good intentions of whoever holds it. The Constitution’s order is recommendation, consent, appointment; a president may decline to appoint, but that power sits at the end of the sequence. Demanding a new name before the Assembly has even voted sets a precedent any future president, of any party, could use. Common sense cuts both ways, though: the Court owes the public a clear account of its own procedure, and a bench left vacant for months carries a real cost. Readers may judge otherwise, which is rather the point.

FAQ

Who invented the separation of powers? The idea runs from Aristotle through Locke, but Montesquieu gave it its classic three-branch form in 1748.

Is separation the same as checks and balances? Not quite. Separation divides power; checks and balances let each divided power stop the 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