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서양철학사 읽기 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표지

서양철학사 읽기 ⑨ 침묵, 금기, 그리고 영혼의 정화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개 직각삼각형부터 떠오른다. 그러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스승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여긴 것은 정리가 아니라 삶이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을지, 언제 말하고 언제 입을 다물지, 잠들기 전에 무엇을 생각할지까지 정해진 삶이다.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이란 한마디로, 영혼을 맑게 하려는 목적 아래 음식과 말과 우정을 규칙으로 묶은 공동의 삶이었다.

철학을 이론의 목록으로 보는 사람에게 콩을 먹지 말라는 계율은 우스운 곁가지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인에게 철학은 먼저 사는 방식이었다. 앞 편에서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가 걸어온 바깥 역사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담장 안의 하루를 들여다볼 차례다.

세 줄 요약

  • 피타고라스는 이론보다 삶의 방식을 남겼다.
  • 규칙의 목적은 윤회하는 영혼을 맑게 하는 것이었다.
  • 금기와 식단의 전승은 서로 엇갈린다.

철학은 먼저 삶의 방식이었다

흰옷을 입은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이 언덕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향해 팔을 들고 노래하는 그림
표도르 브론니코프, 〈해돋이를 맞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찬가〉(1869). 19세기 화가가 상상한 장면이다.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피타고라스에 관한 가장 믿을 만한 증언 가운데 하나는 뜻밖에도 칭찬이 아니라 비교에서 나온다. 플라톤은 『국가』 10권에서 호메로스를 평가하면서, 이 위대한 시인은 사람들에게 따라 살 만한 삶의 길을 남기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피타고라스가 바로 그 일 때문에 유독 사랑받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플라톤 시대에도 피타고라스식 삶이라 부르는 방식으로 남들과 구별되어 보였다고 덧붙인다.

플라톤은 여기서 피타고라스의 학설을 한 줄도 언급하지 않는다. 기억된 것은 수학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어떤 학자가 논문보다 식단과 수면 습관으로 더 유명한 셈인데, 고대에는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철학자를 가려내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윤회하는 영혼과 정화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의 뿌리에는 영혼에 관한 믿음이 있다. 영혼은 죽지 않으며, 한 몸이 죽으면 다른 몸으로 옮겨 가고, 그 몸은 사람일 수도 짐승일 수도 있다는 믿음이다. 이를 영혼 윤회(metempsychōsis)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디카이아르코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동시대 사람의 증언도 하나 남아 있다. 시인 크세노파네스는 피타고라스가 길에서 누군가 강아지를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울음소리에서 죽은 친구의 영혼을 알아보았으니 그만 때리라고 말렸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풍자 시인이 비웃으려고 남긴 기록이 오히려 가장 오래된 증거가 되었으니, 철학자를 놀리는 일에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셈이다.

영혼이 옮겨 다닌다면 문제는 어떤 상태로 옮겨 가느냐다. 여기서 정화(katharsis)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 생각은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과 깊이 닮았다. 몸은 영혼을 가두는 곳이고, 올바른 삶으로 영혼을 씻어 내야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새로웠던 점은 씻어 내는 수단에 음악과 수학을 넣었다는 데 있다. 아리스토크세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몸은 의술로, 영혼은 음악으로 정화했다. 수를 헤아리는 일도 그들에게는 영혼을 씻는 수행이었다.

콩을 먹지 말 것: 아쿠스마타라는 수수께끼

피타고라스학파에는 글이 아니라 입으로 전해지는 규칙들이 있었다. 이를 아쿠스마타(akousmata), 곧 들은 것들이라 불렀고, 뜻을 감춘 말이라는 점에서 쉼볼라(symbola)라고도 했다. 이암블리코스가 전하는 목록에 따르면 이 규칙은 세 종류였다. 학자들은 이 목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잃어버린 책에서 나왔다고 본다. 무엇인가를 묻는 것, 무엇이 가장 그러한가를 묻는 것,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정한 것이다. 가장 지혜로운 것은 수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조화라는 답이 두 번째 종류에 속한다.

세 번째 종류가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기묘하다.

규칙 전하는 곳 뒷날의 풀이
콩을 먹지 말 것 아리스토텔레스(디오게네스 8.34) 이유가 여럿으로 엇갈림
불을 칼로 쑤시지 말 것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8.17 권력자의 화를 돋우지 말라
저울대를 넘지 말 것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8.17 공평함을 넘어서지 말라
됫박 위에 앉지 말 것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8.17 오늘과 내일을 함께 돌보라
심장을 먹지 말 것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8.17 근심으로 속을 태우지 말라
오른쪽 신부터 신을 것 이암블리코스 『피타고라스적 삶』 종교적 정결, 뜻은 불분명

콩의 금기가 특히 많은 추측을 낳았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록만 보아도, 콩이 생식기를 닮아서, 저승의 문을 닮아서, 몸에 해로워서, 우주의 모양을 닮아서, 과두정의 추첨에 쓰여서라는 다섯 가지 이유가 나란히 적혀 있다. 이유가 다섯 개나 된다는 것은 누구도 진짜 이유를 몰랐다는 뜻이다.

일반적 해석은 아쿠스마타가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지킨 종교적 금기였고, 표의 오른쪽 칸 같은 도덕적 풀이는 나중에 붙었다고 본다. 다른 해석은 이 규칙들이 처음부터 수수께끼처럼 뜻을 숨긴 가르침이었다고 보거나, 구성원들이 이를 얼마나 엄격히 지켰는지부터 의심한다. 훗날 학파가 규칙을 지키는 쪽(아쿠스마티코이)과 수학과 자연을 연구하는 쪽(마테마티코이)으로 갈라졌다는 전승을 보면, 규칙과 학문의 관계는 피타고라스학파 안에서도 이미 논쟁거리였다.

피타고라스는 채식주의자였는가

영혼이 짐승의 몸으로도 옮겨 간다면, 고기를 먹는 일은 먼 친척을 먹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피타고라스학파가 채식을 했으리라는 추론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고대의 증언들이 이 추론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루벤스의 그림 〈채식을 권하는 피타고라스〉 왼쪽 부분, 망토를 두른 철학자들과 앉아 있는 노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프란스 스네이데르스, 〈채식을 권하는 피타고라스〉(1618~1630년 무렵)의 왼쪽 부분.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5권의 채식 설교 대목을 그렸고, 오른쪽에는 과일과 채소가 쌓여 있다. 영국 왕실 컬렉션 소장,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천문학자 에우독소스는 피타고라스가 살아 있는 것을 먹지 않았고 푸줏간 주인이나 사냥꾼과 가까이하지도 않았다고 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좀 더 온건하게, 그들이 자궁이나 심장 같은 특정 부위만 삼가고 나머지 고기는 먹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크세노스는 정반대 쪽에 섰다. 피타고라스는 밭 가는 소와 숫양만 빼고 대부분의 고기를 먹었으며, 새끼 돼지와 어린 염소를 특히 좋아했고, 콩도 즐겨 먹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크세노스는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과 직접 교류했으니 그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그러나 스승을 괴짜가 아닌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고 금기를 지웠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기원전 4세기의 희극 시인들은 살아 있던 것은 입에 대지 않고 물과 마른 무화과로 버티는 피타고라스 추종자들을 무대에서 조롱했다. 희극이 놀릴 정도였다면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 안에도 여러 식탁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정직하다.

어쨌든 후대는 피타고라스를 채식의 수호성인으로 기억했다. 1847년 영국에서 채식주의자 협회가 생겨 베지테리언이라는 말이 퍼지기 전까지, 고기 없는 식단은 흔히 피타고라스식 식단이라 불렸다. 실제 식탁과 무관하게 이름만 식단으로 남은 셈이다.

침묵과 공동체: 친구의 것은 함께 쓴다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톤에서 피타고라스를 따르던 사람들은 느슨한 수강생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였다. 역사가 티마이오스를 인용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친구의 것은 함께 쓰고 우정은 평등이라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이 피타고라스였고, 제자들은 재산을 한데 모았다. 다만 친구의 것은 공동의 것이라는 말은 플라톤도 속담으로 인용할 만큼 흔한 격언이어서, 피타고라스가 처음 했다는 주장은 넉넉하게 에누리해 들어야 한다.

입문의 문턱도 높았다고 전한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5년 동안 침묵하며 휘장 너머에서 스승의 목소리만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극적인 숫자는 기원후 3세기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와 4세기 초의 이암블리코스 같은 늦은 기록에서 나온다. 기원전 4세기의 이소크라테스도 침묵을 그들의 특징으로 꼽았으니 침묵의 수련은 오래된 것이겠지만, 5년이라는 기간까지 믿을 필요는 없다.

이 공동체에는 여성도 있었다. 디카이아르코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크로톤에 와서 원로, 청년, 소년, 여성에게 따로 연설했다. 이암블리코스는 이름이 전하는 피타고라스학파 여성 열일곱 명을 꼽았고,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테아노는 피타고라스의 아내라고도, 제자라고도 전한다. 다른 어느 고대 학파보다 여성의 자리가 컸던 셈이다. 다만 테아노의 편지처럼 이들의 이름으로 전하는 글은 대부분 훨씬 뒤에 지어진 것이다.

하루를 되짚는 습관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가운데 오늘날 가장 쓸모 있어 보이는 것은 가장 소박한 규칙, 곧 잠들기 전에 그날 한 일을 되짚으라는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그들은 집에 들어설 때 스스로 물었다. 오늘 어디서 잘못했는가, 무엇을 이루었는가, 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일은 무엇인가. 포르퓌리오스는 깨어나서 그날 할 일을 헤아리는 아침의 점검을 덧붙인다. 이 가르침은 『황금 시편』이라는 교훈시에도 담겼는데, 이 시는 피타고라스보다 수백 년 뒤에 모양을 갖춘 것으로 본다.

이 습관은 학파의 담장을 넘어 오래 살아남았다. 로마의 세네카는 섹스티우스라는 철학자가 하루를 마칠 때마다 자기 마음을 심문했다고 적고, 자신도 그렇게 한다고 고백했다. 프랑스 철학사가 피에르 아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대 철학 전체가 본래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영적 수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피타고라스학파의 기이한 규칙들은 철학의 곁가지가 아니라, 철학이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오래된 흔적이다.

물론 콩을 먹지 않는다고 영혼이 맑아진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앎이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 그리고 삶의 규칙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가볍게 버릴 것이 아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유를 잃은 규칙과 규칙을 떠난 이유 사이에서 결국 둘로 갈라졌다. 그들이 규칙의 이유로 내세운 것, 곧 세계가 수와 조화로 되어 있다는 생각은 다음 편,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에서 다룬다.

서양철학사 읽기 · ① 신화란 무엇인가 · ②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 ③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 · ④ 미토스와 로고스 · ⑤ 탈레스 · ⑥ 아낙시만드로스 · ⑦ 아낙시메네스 · ⑧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학파 · 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 다음 편: ⑩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

자주 묻는 질문

피타고라스학파는 왜 콩을 먹지 않았나요?

확실한 이유는 전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콩이 생식기나 저승의 문을 닮았다, 몸에 해롭다, 추첨에 쓰인다 같은 여러 설을 나란히 적었다. 이유가 이렇게 많다는 것 자체가 고대에도 진짜 이유를 몰랐다는 뜻이다.

피타고라스는 채식주의자였나요?

전승이 엇갈린다. 에우독소스는 살아 있는 것을 먹지 않았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특정 부위만 삼갔다고 했으며, 아리스토크세노스는 대부분의 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다만 1847년 무렵 베지테리언이라는 말이 퍼지기 전까지 채식은 흔히 피타고라스식 식단이라 불렸다.

아쿠스마타란 무엇인가요?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입으로 전해진 짧은 규칙과 문답을 말한다. 무엇인가, 무엇이 가장 그러한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세 종류로 나뉘며, 콩을 먹지 말 것, 불을 칼로 쑤시지 말 것 같은 금기가 여기에 속한다.

함께 읽을 책

  • 『서양철학사』 상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피타고라스학파의 역사, 생활양식, 형이상학을 차례로 정리했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아카넷): 크세노파네스의 강아지 이야기를 비롯해 피타고라스에 관한 고대 증언을 원문과 함께 읽을 수 있다.
  •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아도(이세진 옮김, 열린책들): 고대 철학을 이론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읽는 관점을 가장 설득력 있게 펼친 책.

참고문헌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개정판),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 Plato, Republic X, 600a–b.
  • Xenophanes, fr. 7 (DK 21B7), in Diogenes Laertius VIII.36.
  •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VIII.10, 17–20, 22, 34, 42–43.
  • Porphyry, Life of Pythagoras 7, 18–19, 40; Iamblichus, On the Pythagorean Life 72, 81–89, 267.
  • Seneca, On Anger III.36.
  • Walter Burkert, Lore and Science in Ancient Pythagoreanism, Harvard University Press, 1972.
  • Pierre Hadot, Exercices spirituels et philosophie antique, 1981; Qu’est-ce que la philosophie antique?, 1995.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ythagoras”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ythagoreanism”

필로렌즈 편집자
일상에 깃든 존재를, 조금 더 존재답게. 철학의 렌즈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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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ythagorean Way of Life

Silence, taboos, and the purification of the soul

Pythagoras is remembered today for a theorem, but his followers remembered him for a way of living. Plato, comparing him with Homer, says that Homer left no way of life for others to follow, whereas Pythagoras was loved precisely for this, and his followers were still recognisable in Plato’s day by what they called the Pythagorean life. Plato mentions no doctrine at all. What survived was a discipline.

At its root lay the belief that the soul is immortal and passes into other bodies, human or animal. Xenophanes mocked Pythagoras for recognising a dead friend’s voice in the yelp of a beaten puppy, and in doing so left us our earliest evidence. If the soul migrates, it must be kept clean: the Pythagoreans purified the body with medicine and the soul with music, and treated mathematics as a spiritual exercise.

The community at Croton lived by orally transmitted rules, the akousmata: do not eat beans, do not stir the fire with a knife, do not step over a balance. Later writers turned them into moral allegories, but most scholars think they began as literal religious taboos. On diet the ancient witnesses disagree: Eudoxus says Pythagoras ate nothing animate, Aristotle that only certain parts were forbidden, Aristoxenus that he enjoyed young pork. Stories of a five-year novitiate of silence come from late biographers. Women, notably Theano, played a larger role than in any other ancient school. The habit of reviewing one’s day before sleep passed through Seneca to Pierre Hadot’s view of ancient philosophy as a way of life.

FAQ

Why did the Pythagoreans avoid beans?
Nobody knows. Aristotle recorded several competing explanations, which suggests the real reason was already lost.

Was Pythagoras a vegetarian?
The sources conflict. Yet until the word “vegetarian” spread in the 1840s, a meatless diet was commonly called the Pythagorean di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