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정리: 미메시스, 뮈토스, 카타르시스 쉽게 읽기

미학사 읽기 ③ 미메시스, 뮈토스, 카타르시스

스승은 시인을 나라 밖으로 내보내려 했고, 제자는 시인을 위한 교과서를 썼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은 서양에서 예술을 하나의 학문으로 다룬 첫 책으로 꼽힌다. 한 문장으로 답하면, 『시학』은 시가 행동하는 인간을 재현하는 일이며 그 재현의 심장은 사건의 짜임이고 비극은 연민과 두려움을 거쳐 그 감정의 카타르시스에 이른다고 말하는 책이다. 미메시스, 뮈토스, 카타르시스. 이 세 낱말이 『시학』을 여는 열쇠로 흔히 꼽힌다.

앞 편에서 플라톤이 예술을 어떻게 의심했는지 보았다. 『미학대계』 1권의 고대 셋째 글은 김헌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세 개념에 기초한 인간 행동 세계의 시적 통찰과 창작의 원리」다. 제목이 일러 주듯 『시학』은 인간이 행동하는 세계를 시인이 어떻게 꿰뚫어 보고 어떻게 짜 넣는가를 묻는 책이다. 이 글은 그 틀을 빌려, 『시학』의 원문과 학계의 일반적 이해를 따라 세 개념을 차례로 읽는다.

세 줄 요약

  • 시는 행동하는 인간을 재현하는 미메시스다.
  • 비극의 영혼은 사건의 짜임, 곧 뮈토스다.
  • 카타르시스의 뜻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시학』은 어떤 책인가

『시학』은 기원전 4세기 후반 아테네의 리케이온에서 쓰인 강의 노트로 여겨진다. 스물여섯 개의 짧은 장으로 되어 있고, 문장은 거칠며 군데군데 끊겨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서사시와 비극을 다루고 희극은 나중에 말하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을 지킨 둘째 권은 전하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 사라진 책을 둘러싸고 수도원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소설 『장미의 이름』을 썼다. 철학책이 남긴 공백이 추리소설 한 권을 먹여 살린 셈이다.

남은 부분의 주인공은 비극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아테네의 극장을 채운 지 백 년쯤 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완성된 장르를 해부대에 올렸다. 헤라클레이토스를 모순율 앞에 세웠던 그 꼼꼼한 논리학자가 이번에는 극장으로 간 셈이다. 그는 좋은 비극과 나쁜 비극을 가르는 기준을 찾았고, 그 기준을 찾는 과정에서 예술 일반에 대한 이론을 세웠다.

미메시스: 사람은 흉내 내며 배운다

『시학』 첫머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사시, 비극, 희극, 피리와 키타라의 음악, 춤을 모두 미메시스(mimesis), 곧 재현의 한 갈래로 묶는다. 이들은 무엇으로 재현하는가(리듬, 말, 선율), 무엇을 재현하는가(행동하는 사람), 어떻게 재현하는가(이야기하기, 연기하기)에 따라 갈린다(1~3장).

4장은 왜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지 묻는다. 그에 따르면 재현은 어려서부터 타고난 본능이다. 사람은 동물 가운데 가장 흉내를 잘 내고, 처음 배우는 것도 흉내로 배운다. 그리고 사람은 재현된 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실물로는 보기 괴로운 것, 이를테면 시체나 하찮은 짐승도 정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보면 즐겁다. 그림을 보며 이것은 무엇이구나 하고 알아보는 순간 배움이 일어나고, 배움은 철학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1448b4~19).

여기서 이미 스승과 갈라진다. 플라톤에게 그림은 진리에서 두 걸음 더 멀어진 그림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그림은 세계를 알아보는 창이다. 같은 낱말 미메시스가 한 사람에게는 속임수의 이름이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배움의 이름이 되었다.

비극의 정의와 여섯 요소

6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정의한다. 풀어 쓰면 이렇다. 비극은 진지하고 완결되었으며 일정한 크기를 가진 행동을 재현한다. 장마다 알맞게 꾸민 말로, 이야기로 들려주는 대신 배우의 연기로 보여 준다. 그리고 연민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그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이룬다(1449b24~28). 이 한 문단이 서양 연극 이론의 이천 년을 좌우했다.

그는 비극을 여섯 요소로 나누고 순위를 매긴다.

순위 요소 뜻
1 뮈토스 사건들의 짜임, 곧 플롯
2 에토스 인물의 성격
3 디아노이아 인물의 생각과 논변
4 렉시스 말씨, 대사의 표현
5 멜로포이이아 노래와 음악
6 옵시스 무대의 볼거리

순위의 이유가 재미있다. 비극이 재현하는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행동과 삶이며, 사람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도 행동에서 갈린다. 그래서 성격 없는 비극은 있을 수 있어도 행동 없는 비극은 있을 수 없다(1450a23~25). 아리스토텔레스는 뮈토스를 비극의 원리이자 영혼이라고 부른다(1450a38). 볼거리는 맨 아래다. 그것은 시인의 솜씨보다 무대 기술자의 솜씨에 달렸기 때문이다. 오늘의 블록버스터 제작자가 들으면 서운해할 순위다.

산비탈을 따라 반원형으로 계단식 관람석이 둘러싼 고대 그리스 에피다우로스 극장
에피다우로스 극장.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그리스 극장으로, 무대 한가운데서 낸 작은 소리도 맨 뒷줄까지 들린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 Olecorre(2007),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뮈토스: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다

좋은 뮈토스는 어떤 것인가. 먼저 완결되어야 한다. 완결된 것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진다. 시작은 앞에 반드시 무엇이 와야 하지는 않는 것, 끝은 뒤에 더 무엇이 오지 않는 것, 중간은 앞뒤에 무엇이 있는 것이다(7장). 이 정의는 너무 당연해 보여서 웃음이 나지만, 당연한 것을 처음 말하는 데에는 늘 시간이 걸린다.

다음은 크기다. 아주 작은 동물은 너무 빨리 보여서 아름답지 않고, 길이가 만 스타디온쯤 되는 동물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아름답지 않다(1450b34~1451a6). 이야기도 그렇다. 기억 속에 한꺼번에 담길 만큼 길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여야 한다. 한 사람이 겪은 일을 모두 늘어놓는다고 하나의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의 일생을 다 쓰지 않고 하나의 행동을 중심으로 『오디세이아』를 짰다(8장).

9장에서 『시학』의 가장 유명한 주장이 나온다. 시인의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 곧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더 진지하다. 역사는 알키비아데스가 무엇을 했는지 같은 개별을 말하고, 시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말하고 행할 법한지 같은 보편을 말하기 때문이다(1451a36~b11). 지어낸 이야기가 실제 일보다 진실에 가깝다는 역설은 소설가들에게 오래도록 좋은 변명이 되었다.

가장 강한 뮈토스는 반전과 발견을 품는다. 반전(페리페테이아)은 일이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뒤집히는 것이고, 발견(아나그노리시스)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를 안심시키려고 온 사자가 그의 출생을 밝히는 순간 둘이 한꺼번에 일어난다(1452a24~33). 13장은 주인공을 말한다. 아주 선한 사람이 불행해지면 우리는 분개하고, 악한 사람이 불행해지면 고소해할 뿐이다. 연민과 두려움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악덕 때문이 아니라 어떤 하마르티아 때문에 불행에 빠질 때 생긴다(1453a7~17). 일반적 해석은 오래도록 이것을 성격의 결함, 이른바 비극적 결함으로 읽었다. 다른 해석은 낱말의 뜻에 충실하자고 한다.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빗나간다는 말에서 왔고, 오이디푸스의 경우처럼 모르고 저지른 판단의 착오에 가깝다는 것이다. 근래 연구는 대체로 뒤쪽으로 기울었다.

카타르시스: 무엇이 씻겨 나가는가

카타르시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정의에 단 한 번 나온다. 설명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8권에서 음악이 사람에게 카타르시스와 함께 즐거운 가벼움을 준다고 말하며 자세한 것은 시론에서 말하겠다고 덧붙인다(1341b32~1342a16). 그 설명은 남아 있는 『시학』 어디에도 없다. 한 낱말이 이천 년 넘게 학자들의 일거리가 된 사정이 이렇다.

해석 무엇이 일어나나 대표 논자
배설(의학) 쌓인 감정을 밖으로 쏟아 낸다 베르나이스(1857)
정화(윤리) 감정이 알맞은 정도로 다듬어진다 레싱(1767~1769)
명료화(지성) 연민과 두려움의 뜻을 깨닫는다 골든(1962~)

일반적 해석은 19세기 고전학자 야코프 베르나이스에게서 왔다. 카타르시스는 그리스 의학에서 몸의 나쁜 체액을 내보내는 일을 뜻했으니, 비극은 관객의 연민과 두려움을 한껏 불러일으켜 바깥으로 흘려보내는 치료라는 것이다. 극장을 나서며 개운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이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그보다 앞서 레싱은 감정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다듬어지는 도덕적 정화로 읽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중용과 잘 맞는 해석이다.

다른 해석은 4장의 배움의 즐거움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고전학자 레온 골든은 카타르시스를 지적 명료화로 읽었다. 우리는 비극을 보며 무엇이 연민할 만하고 무엇이 두려워할 만한지를 분명히 알게 되고, 그 앎이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비극을 치료소에서 강의실로 옮긴다.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할 문장은 남아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약속을 지켰다면 우리는 한 시간 만에 답을 알았을 것이고, 수많은 논문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에게 보낸 답장

『시학』은 플라톤의 이름을 들어 반박하지 않는다. 그래도 많은 연구자는 이 책을 『국가』 10권에 보내는 답장으로 읽는다. 플라톤은 철학과 시가 오래된 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고, 시가 진리에서 멀고 감정을 부추기니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 둘 수 없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셋으로 정리된다.

첫째, 재현은 속임수가 아니라 사람의 본성이자 배움의 길이다. 둘째, 시는 진리에서 먼 것이 아니라 보편을 다루므로 오히려 역사보다 철학에 가깝다. 셋째, 시가 일으키는 감정은 사람을 망치는 대신 카타르시스에 이른다. 플라톤이 시를 진리의 법정에 세웠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에게 시만의 법을 주었다. 시는 도덕이나 정치의 잣대가 아니라 좋은 비극이란 무엇인가라는 자기 기준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근대의 생각은 멀리 이 자리에서 싹을 틔운다.

그러나 고대의 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600년쯤 뒤 로마에서 플로티누스는 아름다움을 다시 감각 너머의 근원으로 끌어올린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사건의 짜임이 아니라 영혼이 일자에게로 돌아가는 길이다. 스승 플라톤의 목소리가 한층 신비한 음색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다음 편에서 그 길을 따라간다.

필로렌즈의 시선: 앎은 늘 조금 늦게 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강한 이야기에 발견이 있다고 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오이디푸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그런 순간이다. 이 장면이 이천 년 넘게 사람을 붙드는 까닭은 그것이 극장 밖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자기 삶의 한가운데 있을 때 그 삶의 짜임을 보지 못한다. 시작과 중간과 끝은 대개 끝에 이르러서야 보인다. 자기에 대한 앎은 늘 조금 늦게, 그리고 대개 아프게 온다.

그러니 슬픈 이야기를 찾아가는 마음은 이상하지 않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과녁을 조금 빗나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연민과 두려움을 함께 느낀다. 그것은 남의 불행이면서 우리 삶의 예행연습이다. 카타르시스를 배설로 읽든 정화로 읽든 명료화로 읽든, 비극을 본 사람은 자기 삶을 조금 더 하나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남는 물음은 이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기 이야기의 어디쯤에서, 아직 알아보지 못한 무엇을 지나치고 있을까.

미학사 읽기 · ① 서양 고대미학의 흐름 · ② 플라톤의 예술이해 · ③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 ④ 플로티누스의 미 개념 · 다음 편: 플로티누스의 미 개념 · 전체 목차

자주 묻는 질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미메시스는 무슨 뜻인가요?

미메시스는 재현 또는 모방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 음악, 춤, 그림을 모두 행동하는 사람을 재현하는 일로 보았다. 그는 재현을 사람이 타고난 본능으로 보고, 재현된 것을 보며 무엇인지 알아보는 데서 배움의 즐거움이 생긴다고 했다(『시학』 4장).

시가 역사보다 철학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개별 사건을 말하지만, 시는 개연성이나 필연성에 따라 일어날 법한 일을 말한다. 시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할 법한 일, 곧 보편을 보여 주므로 더 철학적이고 진지하다는 것이다(『시학』 9장).

카타르시스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시학』은 비극이 연민과 두려움을 통해 그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이룬다고만 말하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을 밖으로 쏟아 내는 의학적 배설, 감정을 알맞게 다듬는 윤리적 정화, 감정의 뜻을 깨닫는 지적 명료화 같은 해석이 나란히 있다.

함께 읽을 책

  • 『미학대계 1: 미학의 역사』, 미학대계간행회 엮음(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고대 넷째 글까지 이어서 읽으면 플라톤에서 플로티누스까지의 흐름이 잡힌다.
  • 『수사학/시학』, 아리스토텔레스(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017):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번역. 『시학』은 짧아서 한나절이면 다 읽는다.
  • 『시학』, 아리스토텔레스·호라티우스·롱기누스(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2002): 아리스토텔레스 뒤로 이어진 고대 시론까지 한 권에 묶었다.

참고문헌

  • 김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세 개념에 기초한 인간 행동 세계의 시적 통찰과 창작의 원리」, 『미학대계 1: 미학의 역사』, 미학대계간행회 엮음,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 Aristotle, Poetics 1–4, 6–9, 10–13 (1447a–1453b); Politics VIII.7, 1341b32–1342a16.
  • Plato, Republic X, 595a–608b.
  • Jacob Bernays, Grundzüge der verlorenen Abhandlung des Aristoteles über Wirkung der Tragödie, Breslau, 1857.
  • Gotthold Ephraim Lessing, Hamburgische Dramaturgie, 1767–1769.
  • Leon Golden, “Catharsis”, Transactions and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logical Association 93, 1962.
  • Stephen Halliwell, Aristotle’s Poetics, London, 1986.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s Aesthetics”

필로렌즈 편집자
일상에 깃든 존재를, 조금 더 존재답게. 철학의 렌즈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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