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헤라클레이토스의 상대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상대주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과 크라튈로스

서양철학사 읽기 ⑫ 모순율 앞에 선 생성의 철학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로 유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유명세가 달갑지 않았다. 그 말을 끝까지 밀고 가면 같은 것이 있으면서 동시에 없다는 데 이르고, 거기서는 참과 거짓의 구별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철학사에서 헤라클레이토스 상대주의라 부르는 것은 이 고발의 이름이다. 한 문장으로 답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 본인보다 그를 극단으로 밀고 간 독자들을 겨냥해 모순율을 세웠고, 헤라클레이토스가 정말 상대주의자였는지는 따로 따져야 할 문제다.

앞 편에서 흐름과 대립과 영원회귀, 그리고 로고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보았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은 그 바로 뒤에 헤라클레이토스의 상대주의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로 한 절로 둔다. 한 철학자를 그의 가장 엄격한 독자가 어떻게 읽었는지 보는 자리다. 피고는 이천오백 년 전에 죽었고, 변론은 남은 단편 백여 개가 대신한다.

세 줄 요약

  • 아리스토텔레스는 모순율을 가장 확실한 원리로 세웠다.
  • 극단의 만물유전설은 말하는 일 자체를 무너뜨린다.
  • 헤라클레이토스 본인은 상대주의자가 아니었을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 상대주의라는 고발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책에서 헤라클레이토스를 불러낸다. 『형이상학』 4권 3장에 따르면 같은 것이 있으면서 없다고 믿는 일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한데, 어떤 이들은 헤라클레이토스가 그렇게 말했다고 여긴다(1005b23–26). 같은 책 7장에 따르면 모든 것이 있으면서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모든 말을 참으로 만든다(1012a24–26). 『자연학』과 『토피카』는 좋음과 나쁨이 같다는 주장을 헤라클레이토스의 것으로 든다.

고발의 요지는 간단하다. 모든 것이 있으면서 없다면 어떤 말도 참이다. 어떤 말도 참이라면 어떤 말도 거짓이 아니다. 그리고 거짓일 수 없는 말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 고발이 참이라면 그에 맞서는 변론도 참이니, 법정은 판결 없이 문을 닫아야 한다.

공범도 하나 있다. 사람이 만물의 척도라고 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다. 『형이상학』 4권 5장에 따르면 그의 주장은 헤라클레이토스 쪽과 같은 생각에서 나왔고, 둘은 함께 서거나 함께 넘어진다(1009a6–8). 각자에게 보이는 대로가 각자에게 참이라면, 같은 것이 한 사람에게는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다. 생성의 철학이 상대주의라는 딱지를 얻은 것은 이 짝짓기 때문이다.

모순율: 모든 원리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론은 모순율(principle of non-contradiction)이다. 『형이상학』 4권 3장에 따르면 같은 것이 같은 때에 같은 대상에게 같은 점에서 속하면서 동시에 속하지 않을 수는 없다(1005b19–20). 그는 이것을 모든 원리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이라 불렀다.

중요한 것은 세 개의 단서다. 같은 때, 같은 대상, 같은 점에서. 식은 커피는 아침에는 뜨거웠고 지금은 뜨겁지 않다. 때가 다르니 모순이 아니다. 같은 커피가 손에는 미지근하고 혀에는 뜨겁다. 점이 다르니 역시 모순이 아니다. 모순은 이 단서들을 모두 맞춘 뒤에도 있다와 없다가 함께 남을 때만 생긴다. 세계는 그런 경우를 아직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이 원리는 증명할 수 없다. 가장 확실한 원리보다 더 확실한 전제는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교육이 모자란 탓으로 돌리고(4권 4장, 1006a5–8), 대신 반박의 방법을 쓴다. 상대에게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뜻이 통하는 말을 한마디만 해 보라고 하는 것이다(1006a18–22). 상대가 사람이라고 말하고 그 말로 무언가를 뜻한다면,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닌 것을 그 뜻에서 내쫓았다. 모순율을 부정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모순율을 쓰고 있는 셈이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런 사람은 그런 한에서 식물과 다를 바 없다(1006a14–15). 식물과 논쟁해서 이긴 철학자는 없다. 물론 진 철학자도 없다.

크라튈로스의 손가락

식물에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은 실제로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후계자를 자처한 아테네의 크라튈로스다. 『형이상학』 4권 5장에 따르면 그는 끝내 무엇을 말하는 것조차 옳지 않다고 여겨 손가락만 움직였고,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한 헤라클레이토스를 나무랐다. 한 번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1010a7–15). 발을 담그는 사이에 강도 사람도 이미 바뀌니까.

크라튈로스는 일관성을 지켰다. 다만 그 대가로 철학자가 아니라 손가락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진단한다. 그들은 있는 것을 감각되는 것과 같다고 여겼고, 감각되는 자연 전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참된 말을 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1010a1–3).

그의 답은 세 갈래다. 첫째, 바뀌고 있는 것에는 잃어 가는 것이 아직 남아 있고, 생겨나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있다. 둘째, 양은 늘 같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물을 형상(eidos)으로 안다. 아이가 자라 키가 달라져도 우리는 그를 같은 사람으로 알아본다. 셋째, 늘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땅 위의 좁은 영역뿐이고, 그것은 우주 전체의 한 조각에도 못 미친다(1010a15–32). 그의 우주에서 별들은 변하지 않았다. 망원경이 나온 뒤로 이 셋째 답의 사정은 조금 나빠졌다.

만물유전설은 누가 만들었나

흔히 헤라클레이토스의 표어로 알려진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라는 말은 남은 단편 어디에도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 요약을 가장 힘 있게 퍼뜨린 사람은 플라톤이다. 『크라튈로스』 402a에서 소크라테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은 움직이고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다고 하면서, 있는 것들을 강물에 견주어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고 전한다. 이 만물유전설(萬物流轉說)이 철학사 교과서의 헤라클레이토스가 되었다.

『테아이테토스』는 이 흐름을 프로타고라스와 한 줄로 엮는다. 플라톤에 따르면 파르메니데스를 뺀 지혜로운 이들, 곧 프로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 엠페도클레스, 그리고 호메로스까지 모두가 아무것도 그 자체로 있지 않고 늘 생겨날 뿐이라고 본다(152d–e). 대화의 뒷부분은 이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모든 것이 자리를 옮기는 동시에 성질까지 바꾼다면, 무엇을 이렇다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그렇지 않다. 플라톤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새 언어가 필요하고, 남는 말이 있다면 기껏해야 이렇게도 아니라는 한마디일 것이라고 비꼰다(181c–183b).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가운데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 부분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1509~1511) 부분. 『티마이오스』를 들고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윤리학』을 들고 손바닥을 땅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플라톤에게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는 젊어서 크라튈로스에게서 감각되는 것은 모두 흐르고 그것에 대한 앎은 없다는 생각을 익혔고,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형이상학』 1권 6장, 987a32–b1). 그래서 앎의 대상을 흐르는 세계 밖으로 옮겼다. 세 사람이 같은 강 앞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간 셈이다.

인물 흐름을 보는 눈 그 결과
크라튈로스 한 번도 같은 강에 못 든다 말을 버리고 손가락만
플라톤 감각되는 것은 모두 흐른다 변하지 않는 이데아를 따로 세움
아리스토텔레스 바뀌어도 형상은 남는다 모순율로 말을 지킴

고발은 공정했나: 단편이 말하는 것

일반적 해석은 오랫동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쪽에 섰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흐르고, 피타고라스학파가 표의 양쪽으로 갈라 놓은 반대되는 것들이 하나라고 말한 사람, 그래서 상대주의의 원조라는 것이다. 현대에도 조너선 반스 같은 학자는 그가 반대되는 성질을 한 대상에 한꺼번에 붙임으로써 실제로 모순율을 어겼다고 보았다.

다른 해석은 단편을 다시 읽는 데서 출발한다. 커크와 마르코비치 이래 많은 연구자는 강에 관한 단편 셋 가운데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말은 하나(DK B12)뿐이라고 본다. 그 단편에 따르면 같은 강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늘 다른 물이 흘러온다.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판본(B91)과 들어가면서 들어가지 않는다는 판본(B49a)은 후대의 풀어쓰기로 의심받는다. B12만 남기면 그림이 바뀐다. 강은 물이 바뀌기 때문에 강으로 남는다. 흐름은 같음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단편 겉으로 보면 숨은 단서
B61 바닷물 가장 깨끗하고 가장 더럽다 물고기에게, 사람에게
B60 길 오르막과 내리막은 하나다 어느 쪽에서 걷느냐
B88 삶과 죽음 산 것과 죽은 것은 같다 서로 차례로 바뀐다
B12 강 같은 강, 다른 물 물이 바뀌어 강이 남는다

바닷물은 물고기에게는 마실 만하고 이롭지만 사람에게는 마실 수 없고 해롭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관계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같은 길을 두 방향에서 본 것이다. 산 것과 죽은 것, 깨어 있음과 잠, 젊음과 늙음은 한쪽이 다른 쪽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같다. 그레이엄 같은 학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누구에게, 어느 쪽에서, 언제라는 단서를 이미 말없이 쓰고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는 모순율을 어긴 것이 아니라, 모순처럼 보이는 문장으로 사람들이 단서를 찾게 만든 셈이다. 고대인이 그를 어두운 사람이라 부른 데는 이유가 있다. 수수께끼는 말한 사람이 죽으면 독자의 것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고발장에 여지를 남겨 두었다. 4권 3장의 문장은 헤라클레이토스가 그렇게 말했다고 어떤 이들이 여긴다는 것이었고, 그는 바로 이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반드시 믿는 것은 아니라고 적었다(1005b25–26). 11권 5장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직접 따져 물었다면 그도 모순율에 동의했을 것이고, 그는 자기 말이 무엇을 함축하는지 모른 채 말했을 뿐이다(1062a31–b2). 피고를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경솔한 문장가로 본 것이다. 그의 진짜 표적은 헤라클레이토스보다 그를 읽는 한 가지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을 끝까지 따라간 크라튈로스였다고 보는 편이 공정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가 대립의 긴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세계를 말하려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보았다. 하나는 사물에 대한 통찰이고 다른 하나는 말의 규칙이다. 둘은 생각만큼 싸우지 않는다.

흐름의 철학이 말을 위협했다면, 반대쪽 끝에는 흐름 자체를 부정하는 남이탈리아의 엘레아학파가 기다린다. 그 문을 연 사람은 그리스 곳곳을 떠돌며 신들을 사람 모습으로 그린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꾸짖은 크세노파네스다. 생성에서 존재로 넘어가는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필로렌즈의 시선: 바뀌면서 남는 것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크라튈로스의 자리에 선다. 오래전의 자신을 떠올리며 그 사람이 정말 나였는지 낯설어질 때, 오래 알던 얼굴이 세월에 바뀌어 가는 것을 볼 때, 모든 것이 흘러가 버린다는 생각은 손가락만 남은 침묵처럼 마음을 덮는다. 붙잡을 것이 없다면 말할 것도 없다. 크라튈로스의 침묵은 논리의 결론이기 전에, 상실 앞에 선 사람의 오래된 표정으로 읽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차갑게 들리지만 사실은 위로에 가깝다. 바뀌고 있는 것에는 잃어 가는 것이 아직 남아 있고, 키가 달라진 아이를 우리는 같은 사람으로 알아본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강도 물이 바뀌기 때문에 강으로 남는다. 흐름은 같음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지탱한다. 그렇다면 물어볼 만하다. 내 안에서 끝없이 바뀌어 온 것들 사이로, 바뀌면서도 나를 나로 남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서양철학사 읽기 · ① 신화란 무엇인가 · ②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 ③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 · ④ 미토스와 로고스 · ⑤ 탈레스 · ⑥ 아낙시만드로스 · ⑦ 아낙시메네스 · ⑧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학파 · 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 ⑩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 · ⑪ 헤라클레이토스 · ⑫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헤라클레이토스 · ⑬ 크세노파네스 · ⑭ 파르메니데스 · ⑮ 제논의 역설 · ⑯ 엠페도클레스 · ⑰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 ⑱ 아낙사고라스 · ⑲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 다음 편: 크세노파네스 · 전체 목차

자주 묻는 질문

헤라클레이토스는 정말 상대주의자였나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그렇게 읽혀 왔지만 20세기 이후 많은 연구자는 다르게 본다. 바닷물이 물고기에게는 이롭고 사람에게는 해롭다는 단편처럼, 그의 대립 명제에는 누구에게, 어느 쪽에서, 언제라는 단서가 숨어 있어 모순율을 어긴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추종자들, 특히 크라튈로스를 더 강하게 겨냥했다.

모순율이란 무엇인가요?

같은 것이 같은 때에 같은 대상에게 같은 점에서 속하면서 동시에 속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원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4권 3장에서 이것을 모든 원리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이라 불렀고, 증명 대신 이 원리를 부정하려는 사람도 무언가를 뜻하는 말을 하는 순간 이미 그것을 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옹호했다.

크라튈로스는 왜 손가락만 움직였나요?

『형이상학』 4권 5장에 따르면 크라튈로스는 모든 것이 쉬지 않고 바뀌므로 무엇에 대해서도 참된 말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끝내 말하는 것조차 그만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했으며,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한 번도 들어갈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함께 읽을 책

  • 『서양철학사』 상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 다음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로 한 절로 다룬다.
  •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조대호 옮김, 도서출판 길): 4권이 모순율을 옹호하는 고전적인 대목이다. 크라튈로스와 프로타고라스가 함께 등장한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탈레스 외(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과 고대 증언을 원문과 함께 읽으며 고발장과 대조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개정판),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 Aristotle, Metaphysics IV(Γ).3, 1005b19–26; IV.4, 1006a5–22; IV.5, 1009a6–8, 1010a1–32; IV.7, 1012a24–26; XI(K).5, 1062a31–b2; I(A).6, 987a32–b1.
  • Aristotle, Physics I.2, 185b19–25; Topics VIII.5, 159b30–33.
  • Plato, Cratylus 402a; Theaetetus 152d–e, 179d–183c.
  • Heraclitus, DK 22 B12, B49a, B60, B61, B88, B91.
  • G. S. Kirk, Heraclitus: The Cosmic Fragments, Cambridge, 1954; M. Marcovich, Heraclitus, Mérida, 1967.
  • Jonathan Barnes,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Routledge, 1979.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eraclitus” (Daniel W. Graham)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ristotle on Non-contradiction”

필로렌즈 편집자
일상에 깃든 존재를, 조금 더 존재답게. 철학의 렌즈로 담습니다.
소개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