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파르메니데스, 있는 것은 있다

파르메니데스: 있는 것은 있다, 진리의 길과 억견의 길 쉽게 정리

서양철학사 읽기 ⑭ 진리의 길과 억견의 길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흐른다고 했다. 비슷한 무렵 남이탈리아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는 정반대로 말했다. 흐르는 것은 없다.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없다. 상식에 이만큼 정면으로 맞선 철학자는 드물다. 그런데 그 뒤의 서양 형이상학은 상당 부분 이 사람에게 대답하는 데 시간을 썼다.

한 문장으로 답하면,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단 하나의 원리에서 출발해 생성과 변화와 여럿이 모두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논증하려 했다.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생성의 철학을, 크세노파네스에서 엘레아학파의 문턱을 보았으니,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 셋째 장의 한가운데, 존재의 철학으로 들어갈 차례다.

세 줄 요약

  •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했다.
  • 그래서 생성·소멸·운동·여럿을 모두 부정했다.
  • 감각이 아니라 사유를 진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엘레아의 입법자가 쓴 철학 시

엘레아는 기원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에 쫓긴 포카이아 사람들이 이탈리아 남서쪽 바닷가에 세운 도시다. 파르메니데스가 태어난 해는 기원전 515년 무렵으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근거는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다. 거기서 그는 예순다섯 살의 백발 노인으로, 마흔 가까운 제자 제논과 함께 아테네에 와서 아주 젊은 소크라테스를 만난다. 이 만남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더 이른 연대를 준다.

그는 철학자이기 전에 시민이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는 고향에 훌륭한 법을 세웠고, 엘레아의 관리들은 해마다 그 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1960년대 벨리아(엘레아의 로마 시대 이름) 발굴에서는 그의 이름을 새긴 기둥 흉상이 나왔다. 기원후 1세기의 것이니 얼굴이 닮았을 리는 없지만, 오백 년 뒤의 고향 사람들이 그를 자연학자로 기억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벨리아 고고학 공원에 있는 파르메니데스 기둥 흉상. 수염 난 남자의 대리석 머리 아래 받침에 그리스어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엘레아(벨리아)에서 나온 파르메니데스 기둥 흉상. 기원후 1세기 로마 시대 작품으로, 받침에는 피레스의 아들 파르메니데스, 자연학자라는 뜻의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다. 벨리아 고고학 공원 소장. 사진 Sergio Spolti(2016),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그가 남긴 것은 흔히 『자연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시 한 편이다. 호메로스와 같은 육보격 운율로 존재론을 썼는데, 형이상학을 운문으로 쓰는 것은 독자에게 친절한 선택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160행 남짓이다. 가장 긴 단편 8은 6세기의 주석가 심플리키오스가 이 책이 귀해졌다며 길게 베껴 둔 덕분에 살아남았다.

여신이 보여 준 두 갈래 길

시는 여행으로 시작한다(단편 1). 젊은 화자가 해의 딸들이 모는 마차를 타고 밤과 낮의 길이 갈리는 문 앞에 이른다. 문의 열쇠는 정의의 여신 디케가 쥐고 있다. 문이 열리고 이름 없는 여신이 젊은이를 맞아, 진리의 흔들리지 않는 심장과 참된 믿음이 깃들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을 둘 다 배우라고 한다. 시의 두 부분, 진리의 길과 억견의 길은 이 약속에서 나온다. 서시는 계시의 옷을 입었지만 여신이 하는 일은 논증이다. 그녀는 믿으라고 하지 않고 따져 보라고 한다.

여신에 따르면 생각할 수 있는 탐구의 길은 둘뿐이다(단편 2). 하나는 있다, 그리고 있지 않을 수 없다는 길이다. 이것은 진리를 따르는 설득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 그리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길이다. 이 길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없는 것은 알 수도 없고 가리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셋째 길을 걷는다(단편 6). 있음과 없음이 같다고도 하고 같지 않다고도 하는 길, 눈멀고 귀먹은 채 머리가 둘 달린 무리의 길이다.

길 말하는 것 여신의 판정
첫째 길 있다, 없을 수 없다 설득의 길, 진리를 따름
둘째 길 있지 않다, 없어야 한다 아무것도 배울 수 없음
셋째 길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머리 둘 달린 사람들의 길

셋째 길의 머리 둘 달린 무리가 누구인지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대립하는 것들이 하나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를 겨냥했다는 해석이 널리 퍼져 있지만, 감각을 믿는 상식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연구자도 많다.

진리의 길: 존재자는 있다, 사고는 존재다

존재자는 있다

첫째 길에는 주어가 없다. 그리스어 원문은 그냥 에스티(esti), 곧 있다 한 마디다.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파르메니데스는 말하지 않는다. 후대는 그 빈자리에 있는 것(to eon), 곧 존재자를 넣었다. 힐쉬베르거의 첫 소항목 존재자는 있다도 그렇게 읽은 것이다. 동어반복처럼 들리는 이 문장에서 세계의 모습 전체를 끌어내려 한 것이 이 철학의 대담함이다.

한국어로 읽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리스어 에스티는 있다와 이다를 한 낱말로 한다. 한국어는 둘을 가르니, 있다로 읽으면 존재에 관한 주장이, 이다로 읽으면 서술에 관한 주장이 된다. 오웬 같은 연구자는 앞의 것으로 읽었고, 무렐라토스는 사물이 참으로 무엇인지를 말하는 이다로 읽었다. 같은 문장이 한국어로 옮겨지는 순간 이미 해석이 된다.

사고는 존재다

이 길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다투는 문장이 단편 3이다. 생각함과 있음이 같은 것이라는 짧은 한 줄이다.

일반적 해석은 이것을 범위가 같다는 말로 읽는다. 생각될 수 있는 것과 있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있는 것이다. 단편 6과 단편 8의 34~36행이 이 읽기를 돕는다. 다른 해석은 문자 그대로 사유와 존재가 하나라고 읽는다. 플로티노스가 이 문장을 그렇게 인용했고, 근대의 관념론자들과 하이데거도 여기서 각자의 조상을 찾았다.

논증의 뼈대는 같다. 생각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생각이니 그 대상은 있어야 한다. 러셀은 이것을 생각과 말에서 세계에 관한 결론을 끌어낸 최초의 논증으로 꼽고, 바로 거기에 잘못이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페가수스도 생각하고 오래전에 죽은 사람도 생각한다. 생각의 대상이 있다는 것과 그 대상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 구별을 다듬는 데 철학은 이천 년 넘게 걸렸다.

진리의 길: 하나와 모든 것, 현실과 사고

하나와 모든 것

있는 것이 있다는 전제에서 여신은 단편 8에서 있는 것의 표지들을 하나씩 끌어낸다. 논증은 모두 같은 모양이다. 반대를 가정하면 없는 것이 끼어들어야 하고,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으니 반대는 불가능하다.

생성을 보자. 있는 것이 생겨났다면 어디서인가. 없는 것에서라면 그것은 생각할 수 없고, 있는 것에서라면 이미 있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는 더 일찍도 더 늦게도 아닌 바로 그때를 고를 까닭이 없다(8.9~10행). 훗날 충족이유율이라 불릴 생각의 오래된 모습이다. 같은 논리로 소멸도 없다. 그러니 있는 것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것은 지금 한꺼번에, 하나로, 이어져 있다(8.5~6행).

표지 이유 단편 8
생겨나지 않음 없는 것에서는 나올 수 없다 6~21행
나뉘지 않음 어디나 똑같이 있다 22~25행
움직이지 않음 생성도 소멸도 없으니 변할 길이 없다 26~31행
완결됨 모자란다면 전부가 모자란다 32~33행
공처럼 둥긂 가운데서 어디로나 같다 42~49행

마지막 이미지가 흥미롭다. 여신은 있는 것을 잘 둥글린 공의 덩어리에 견준다. 가운데서 어느 방향으로나 똑같이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정말 공 모양의 덩어리인지 완전함의 비유인지는 다시 갈린다. 어느 쪽이든 이 하나는 곧 모든 것이다. 그 바깥에 다른 무엇이 있다면 이것과 그것 사이에 없음이 끼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과 사고

그렇다면 태어나고 죽고 움직이고 빛깔이 바뀌는, 우리가 날마다 보는 세계는 무엇인가. 여신의 대답은 차갑다. 그것은 사람들이 참이라 믿고 붙여 놓은 이름일 뿐이다(8.38~41행).

그래서 여신은 습관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단편 7). 갈피 없이 헤매는 눈, 소리만 울리는 귀와 혀를 믿지 말고 이성(logos)으로 판가름하라는 것이다. 감각이 보여 주는 세계와 사유가 붙잡는 실재가 여기서 처음으로 정면으로 갈라진다. 앞선 철학자들은 물이나 공기가 어떻게 변해 세계가 되는지 설명하려 했지만, 파르메니데스는 변화 자체를 착각으로 돌렸다. 설명해야 할 것을 없애 버리는 것은 철학에서 가장 대담하면서 가장 의심스러운 해법이다.

억견의 길: 빛과 밤의 우주론

진리의 길을 마친 여신은 갑자기 말투를 바꾼다. 믿을 만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이제부터 들려줄 말은 속이는 짜임새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것이다(8.50~52행). 그러고는 우주론을 늘어놓는다. 사람들은 가볍고 부드러운 불꽃의 빛과 어둡고 무거운 밤, 두 형태에 이름을 붙였고, 모든 것은 이 둘로 가득하다(단편 9). 하늘의 고리들 한가운데 신령이 있어 모든 것을 조종하고, 신들 가운데 에로스를 맨 먼저 지어냈다(단편 12, 13).

여기에도 날카로운 관찰이 있다. 달을 남의 빛으로 빛나며 늘 해 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린 대목(단편 14, 15)은 달빛이 햇빛을 되비춘 것이라는 생각의 이른 기록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새벽별과 저녁별이 같은 별임을 처음 안 사람 가운데 하나로 그를 든다. 빛과 밤의 짝은 피타고라스학파 대립표의 빛과 어둠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왜 스스로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 이야기를 시의 상당 부분에 걸쳐 썼느냐다. 오웬을 비롯한 한쪽은 이것을 변증의 장치로 본다. 사람들의 믿음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판본도 두 원리를 세운 데서 이미 길을 잃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여신이 어떤 인간의 생각도 너를 앞지르지 못하게 하려고 이것을 들려준다고 말하는 대목(8.60~61행)이 근거다. 다른 쪽은 이것을 겉모습의 세계를 위한 진지한 차선책으로 본다. 겉모습은 실재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지도는 필요하다.

생성과 존재: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힐쉬베르거가 이 장에 붙인 두 낱말은 생성과 존재다. 두 사람을 나란히 놓으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

구분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실재 끝없이 흐르는 불 움직이지 않는 하나
변화 세계의 본모습 사람들이 붙인 이름
대립 대립의 긴장이 곧 조화 있음과 없음은 섞이지 않음
문체 짧은 산문 잠언 육보격 서사시
고향 이오니아의 에페소스 남이탈리아의 엘레아

둘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질문 위에 서 있다. 변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질서, 곧 로고스를 보았고, 파르메니데스는 변화 자체를 지웠다. 앞의 사람은 세계를 구하고 앎을 위태롭게 했으며, 뒤의 사람은 앎을 구하고 세계를 잃었다.

그 뒤의 철학은 이 둘 사이에서 길을 찾는 역사였다.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는 생겨남과 사라짐을 섞임과 흩어짐으로 바꿔 말해, 그의 규칙을 지키면서 운동을 되살렸다. 원자론자들은 빈 공간, 곧 없는 것도 있다고 선언했다. 플라톤은 변하지 않는 이데아와 변하는 감각 세계를 나누어 두 길을 한 체계에 담았다. 그는 『소피스트』에서 없는 것도 어떤 뜻으로는 있다고 말하려면 아버지 파르메니데스에게 손을 대야 한다고 털어놓았고, 『테아이테토스』에서는 그를 존경스러우면서 두려운 사람이라 불렀다. 이보다 정확한 찬사는 드물다.

그러나 엘레아 안에서는 스승을 지키는 쪽이 먼저 나섰다. 제자 제논은 여럿과 운동을 인정하면 더 우스운 모순에 빠진다고 보여 주었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을 따라잡지 못하고 날아가는 화살은 멈추어 있다. 제논의 역설은 다음 편에서 다룬다.

필로렌즈의 시선: 생각했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마음은 그 반대를 자주 보여 준다.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상실, 받지도 않은 거절, 일어나지 않은 불행을 아주 자세히 그린다. 그리고 그렇게 또렷하게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이미 있는 것처럼 떤다. 생각의 대상이 있다는 것과 그 대상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다르다는 러셀의 구별은, 형이상학의 교정이기 전에 불안한 마음이 붙잡을 수 있는 난간이다.

그래도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배울 것은 남는다. 여신은 믿으라고 하지 않고 따져 보라고 했다. 습관을 따르지 말고 이성으로 판가름하라는 단편 7의 요구는 본래 감각을 겨냥했지만, 두려움이 사실의 얼굴을 하고 찾아올 때에도 쓸모가 있다. 억견의 길에도 지도가 필요하다는 해석처럼, 사람은 겉모습의 세계를 떠나 살 수 없다. 다만 지도와 땅을 헷갈리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니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물어볼 일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생각해 낸 것인가.

서양철학사 읽기 · ① 신화란 무엇인가 · ②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 ③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 · ④ 미토스와 로고스 · ⑤ 탈레스 · ⑥ 아낙시만드로스 · ⑦ 아낙시메네스 · ⑧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학파 · 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 ⑩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 · ⑪ 헤라클레이토스 · ⑫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헤라클레이토스 · ⑬ 크세노파네스 · ⑭ 파르메니데스 · ⑮ 제논의 역설 · ⑯ 엠페도클레스 · ⑰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 ⑱ 아낙사고라스 · ⑲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 다음 편: 제논의 역설 · 전체 목차

자주 묻는 질문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있는 것은 있다는 무슨 뜻인가요?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으며,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원리에서 있는 것이 생겨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나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하나라고 추론했다. 변화와 여럿은 감각에 속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보았다.

사유와 존재는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단편 3의 이 문장은 두 갈래로 읽힌다. 다수의 연구자는 생각될 수 있는 것과 있을 수 있는 것의 범위가 같다는 뜻으로 읽는다. 플로티노스에서 근대 관념론으로 이어지는 다른 읽기는 사유와 존재가 말 그대로 하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진리의 길과 억견의 길은 어떻게 다른가요?

진리의 길은 이성의 논증으로 있는 것의 성격을 밝히는 부분이고, 억견의 길은 빛과 밤이라는 두 원리로 감각 세계를 설명하는 사람들의 우주론이다. 여신은 앞의 것만 믿을 만하다고 말하지만, 뒤의 것을 왜 길게 들려주는지는 해석이 갈린다.

함께 읽을 책

  • 『서양철학사』 상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파르메니데스를 진리의 길 네 갈래와 억견의 길로 정리한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탈레스 외(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파르메니데스의 시 단편과 고대 증언을 원문과 함께 읽을 수 있다. 단편 8은 직접 읽어 볼 만하다.
  •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노년의 파르메니데스와 젊은 소크라테스가 만나는 대화편. 엘레아학파가 후대에 어떻게 비쳤는지 보여 준다.

참고문헌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개정판),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 Parmenides, DK 28 B1–B19 (H. Diels & W. Kranz,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6th ed., 1951).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2005.
  • Plato, Parmenides 127a–128d; Theaetetus 183e; Sophist 237a, 241d.
  • Aristotle, Metaphysics I.5, 986b18–987a2.
  • Herodotus, Histories I.163–167.
  •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IX.21–23.
  • Plutarch, Against Colotes 1126a–b.
  • Simplicius, In Aristotelis Physicorum 144.25–146.25.
  • Plotinus, Enneads V.1.8.
  • G. E. L. Owen, “Eleatic Questions”, Classical Quarterly 10, 1960; A. P. D. Mourelatos, The Route of Parmenides, Yale, 1970(rev. ed. 2008); Patricia Curd, The Legacy of Parmenides, Princeton, 1998.
  • Bertrand Russell,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45, ch. 5.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armenides”

필로렌즈 편집자
일상에 깃든 존재를, 조금 더 존재답게. 철학의 렌즈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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