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크세노파네스, 사람을 닮은 신과 하나의 신

크세노파네스: 의인화된 신 비판과 하나의 신, 엘레아학파의 시작

서양철학사 읽기 ⑬ 엘레아학파의 문을 연 떠돌이 시인

사람은 신을 자기 얼굴로 그린다. 이 뻔한 사실을 처음 소리 내어 말한 사람이 크세노파네스다. 한 문장으로 답하면, 크세노파네스는 사람을 닮은 신들을 비웃고 그 자리에 사람과 조금도 닮지 않은 하나의 신을 세운 떠돌이 시인이며, 같은 손으로 사람의 앎에 처음 한계를 그은 철학자다. 그는 엘레아학파의 맨 앞에 이름이 오르지만, 그 자리가 그에게 꼭 맞는지는 따로 따져 볼 일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흐른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흐름의 철학이 모순율마저 흔든다고 따졌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 셋째 장의 제목은 생성과 존재다. 생성의 편을 보았으니 이제 존재의 편, 남이탈리아의 엘레아로 건너간다. 다만 순서에 속지 말아야 한다. 크세노파네스는 헤라클레이토스보다 나이가 많았고,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를 피타고라스와 나란히 세워 많이 알되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 깎아내렸다(DK 22 B40). 책의 순서는 생각의 순서이지 태어난 순서가 아니다.

세 줄 요약

  • 크세노파네스는 사람 닮은 신들을 비판했다.
  • 그의 신은 하나이고 움직이지 않으며 생각으로 움직인다.
  • 사람의 앎은 끝내 추측이라고 보았다.

엘레아학파와 크세노파네스: 창시자인가 손님인가

엘레아는 이탈리아반도 서남쪽 해안, 캄파니아 지방의 작은 그리스 도시였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540년 무렵, 페르시아에 쫓겨 소아시아의 포카이아를 떠난 사람들이 이 도시를 세웠다(『역사』 1권 163~167). 이 도시의 파르메니데스와 제논, 그리고 사모스의 멜리소스를 묶어 엘레아학파라 부른다. 셋은 한결같이, 참으로 있는 것은 하나이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벨리아(고대 엘레아) 유적의 포르타 로사 아치문과 앞쪽의 옛 성문 터
고대 엘레아의 유적. 아치문 포르타 로사는 기원전 4세기 것이라 크세노파네스보다 뒤에 세워졌고, 앞쪽은 옛 성문 터다. 사진 Carlomorino(2011), CC BY-SA 3.0, 위키미디어 공용

크세노파네스를 이 학파의 맨 앞에 세운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플라톤은 『소피스트』(242d)에서, 만물이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엘레아 족속이 크세노파네스에게서, 아니 그보다 더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1권 5장에서 그를 하나를 내세운 첫 사람이라 부르고, 파르메니데스가 그의 제자였다는 말이 있다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그가 아무것도 분명히 하지 않았고 조금 투박하다고 흉도 본다.

일반적 해석은 이 계보를 받아들인다. 하나이고 한자리에 머물며 움직이지 않는 그의 신은 파르메니데스가 있는 것에 붙인 성질과 놀랄 만큼 닮았다. 다른 해석은 의심한다. 그가 엘레아에서 가르쳤다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대목은 사본에서 의심받는 구절이고, 남은 단편에는 엘레아학파다운 논증이 하나도 없다. 플라톤의 말도 철학자들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농담 섞인 대목에 나온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그를 시인이자 사회 비평가이자 자연학자로 보고, 학파가 나중에 족보 맨 위에 모셔 둔 존경스러운 손님쯤으로 여긴다.

콜로폰의 떠돌이 시인

크세노파네스는 기원전 570년 무렵 이오니아의 콜로폰에서 태어났다. 그는 리디아식 호사에 빠져 자줏빛 옷과 향유 냄새로 광장을 채우던 고향 사람들을 시로 꼬집었다(DK 21 B3). 기원전 546년 무렵 페르시아가 이오니아를 손에 넣을 즈음 그는 고향을 떠났다고 흔히 본다. 추방된 뒤 시칠리아의 장클레와 카타네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떠돌이 생활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그가 직접 셈해 두었다. 스물다섯 살에 시작한 방랑이 예순일곱 해째라는 것이다(B8). 더하면 아흔둘이다. 그는 자기 시를 직접 읊으며 그리스 세계를 돌았다. 피타고라스가 얻어맞는 강아지의 비명에서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는 이야기도 그가 남긴 것이다(B7). 윤회를 믿던 피타고라스를 놀리는 투가 역력하다.

그의 표적은 신화만이 아니었다. 올림피아 우승자는 맨 앞자리와 나라가 대는 식사를 받지만, 크세노파네스에 따르면 그는 자기만큼 대접받을 자격이 없다. 사람과 말의 힘보다 지혜가 낫기 때문이다. 달리기 우승자가 있다고 도시가 더 잘 다스려지지도 않고 곳간이 차지도 않는다(B2). 이 불평은 2,500년 동안 별로 낡지 않았다. 다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대개 지혜 쪽에 서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소와 말이 그림을 그린다면: 의인화된 신 비판

크세노파네스를 철학사에 올린 것은 신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에 따르면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끄럽고 비난받을 일을 모두 신들에게 돌렸다. 도둑질, 간통, 서로 속이기가 그것이다(B11, B12).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에서 보았듯 그리스인에게 두 시인은 교과서이자 경전이었다. 그 교과서를 정면으로 고발한 셈이다.

더 날카로운 것은 그다음 관찰이다. 사람들은 신도 자기들처럼 태어나고 옷을 입고 말을 한다고 여긴다(B14).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기네 신이 코가 납작하고 피부가 검다고 하고, 트라키아 사람들은 자기네 신이 눈이 파랗고 머리가 붉다고 한다(B16). 그리고 소와 말과 사자에게 손이 있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말은 말처럼 생긴 신을, 소는 소처럼 생긴 신을 그릴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B15).

이 논증의 힘은 어느 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신의 모습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다. 신의 얼굴이 믿는 사람의 얼굴을 따라 바뀐다면, 그 얼굴은 신에 대해서보다 믿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 준다. 2,300년 뒤 포이어바흐가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이라고 했을 때, 그는 크세노파네스의 소와 말을 조금 더 길게 그린 셈이다.

하나의 신: 온전히 보고 온전히 생각한다

그는 부수기만 하지 않았다. 신들과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하나의 신이 있고, 그 신은 몸도 생각도 사람을 조금도 닮지 않았다(B23). 그 신은 온전히 보고, 온전히 생각하고, 온전히 듣는다(B24). 그 신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때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은 신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B26). 그러면서도 애쓰지 않고 마음의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흔든다(B25).

구분 시인들의 신 크세노파네스의 신
수 여럿, 가족을 이룬다 가장 큰 하나
모습 사람의 몸과 옷과 목소리 몸도 생각도 사람과 다르다
감각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전체가 보고 듣고 생각한다
움직임 올림포스를 오르내린다 같은 자리에 머문다
힘 손과 무기로 싸운다 생각만으로 만물을 흔든다
행실 도둑질, 간통, 속임 어울리지 않는 일은 없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사람보다 힘이 세고 오래 살 뿐 사람과 같은 종류였다. 크세노파네스의 신은 종류가 다르다. 신을 생각하는 기준이 사람의 모습에서 신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플라톤이 『국가』 2권에서 시인들의 신 이야기를 가려 써야 한다고 할 때 쓴 잣대도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은 하나뿐인가. 일반적 해석은 그를 그리스 최초의 일신론자로 본다. 그의 신 단편 여럿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같은 기독교 저술가의 글 속에 남은 것도 그래서다. 다른 해석은 단편의 문장 자체를 본다. 가장 큰 신이 신들과 사람들 가운데 있다면 다른 신들도 있다는 말이니, 여러 신 가운데 으뜸인 신을 말했다는 것이다. 후대의 학설 모음은 그의 신을 공 모양의 우주와 같게 보았지만, 신이 만물을 흔든다는 단편과는 잘 맞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그 신이 무엇이든, 더 이상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바위 속의 물고기: 흙과 물의 자연학

그는 자연도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끝나고(B27), 생겨나 자라는 것은 모두 흙과 물이며(B29), 우리도 모두 흙과 물에서 태어났다(B33).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도 알고 보면 자줏빛과 붉은빛과 노란빛을 띤 구름이다(B32). 탈레스의 물이나 아낙시메네스의 공기에 견주면 대답은 소박하지만, 여신을 구름으로 바꾸는 손놀림은 더 대담하다.

그의 자연학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화석이다. 3세기의 교부 히폴뤼토스에 따르면, 크세노파네스는 내륙과 산에서 조개껍데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들어 땅과 바다가 섞이는 때가 있다고 주장했다(DK 21 A33). 그가 증거로 든 곳은 다음과 같다.

장소 바위 속에서 본 것
시라쿠사 채석장 돌에 찍힌 물고기와 해초 자국
파로스섬 바위 깊은 곳의 월계수 잎 자국
몰타 온갖 바다 생물의 납작한 흔적

그는 이 자국들이 오래전 모든 것이 진흙이던 때 생겨 굳은 것이라고 보았다. 땅이 바다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되풀이하며 그때마다 사람이 사라진다는 이 순환론은 틀렸다. 그러나 바위 속의 물고기를 보고 신의 장난이 아니라 바다가 한때 거기 있었다고 추론한 것은 옳았다.

확실한 앎은 없다: 크세노파네스의 회의주의

크세노파네스의 마지막 유산은 앎에 관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신들과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분명한 진리를 본 사람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 우연히 완전히 맞는 말을 하더라도 그 자신은 그것이 맞는지 알지 못한다. 모든 것 위에 드리운 것은 추측뿐이다(B34). 그러니 자기 말도 참을 닮은 것쯤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그는 덧붙인다(B35). 철학자가 자기 학설에 붙인 보증서로는 드물게 정직하다.

그렇다고 그가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신들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사람에게 보여 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시간을 들여 찾아가며 더 나은 것을 발견한다(B18). 또 신이 노란 꿀을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무화과가 훨씬 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B38). 우리가 달다고 하는 것도 견줌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이 단편들을 어떻게 읽을지는 의견이 갈린다. 고대 회의주의자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읽고 그를 조상으로 모셨다. 근대의 많은 학자는 더 온건하게 읽는다. 확실성은 없지만 더 나은 추측은 있다는 것, 곧 오류가능주의다. 칼 포퍼는 이 단편들을 손수 영어로 옮기며, 과학이 확실한 진리의 목록이 아니라 점점 나아지는 추측의 역사라는 생각의 첫 표현으로 보았다. 신을 사람의 모습에서 떼어 낸 사람이 사람의 앎도 신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셈이다. 둘은 같은 겸손의 두 얼굴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신에게 준 성질을 다시 보자. 하나이고, 같은 자리에 머물고, 움직이지 않고, 전체가 생각한다. 다음 세대의 파르메니데스는 이 성질들을 신에게서 떼어 내 있는 것 자체에 옮긴다. 크세노파네스가 앎과 추측을 갈라놓은 자리에서 파르메니데스는 진리의 길과 억견의 길을 낸다. 엘레아학파의 본론은 다음 편에서 시작된다.

필로렌즈의 시선: 내 얼굴을 한 그림

소와 말의 비유는 신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좋은 사람, 참된 사랑, 바라던 삶도 대개 그리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두려움이 많은 마음이 그린 정의는 엄하고, 외로운 마음이 그린 사랑은 끝없이 나를 알아주는 얼굴을 하고 있다. 크세노파네스가 가르쳐 주는 것은 그 그림이 틀렸다는 판정이 아니라, 그림을 보기 전에 붓을 쥔 손부터 보라는 순서다. 가장 높은 것을 그린 그림이 나를 꼭 닮았다면, 그 그림은 높은 것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 준다.

꿀과 무화과의 단편은 같은 일을 혀에서 보여 준다. 단맛이 견줌에서 나온다면, 한 번 맛본 꿀은 그 뒤의 무화과를 싱겁게 만든다. 지나간 기쁨이 지금의 기쁨을 흐리게 하고, 갖지 못한 것이 가진 것의 맛을 지우는 것도 그래서다. 크세노파네스는 그래도 더 나은 것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다만 자기 말을 참을 닮은 것쯤으로 받아 달라고 했다. 그 겸손을 마음에 들여 보면 물음 하나가 남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정말 그것이 좋아서인가, 아니면 무엇과 견주었기 때문인가.

서양철학사 읽기 · ① 신화란 무엇인가 · ②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 ③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 · ④ 미토스와 로고스 · ⑤ 탈레스 · ⑥ 아낙시만드로스 · ⑦ 아낙시메네스 · ⑧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학파 · 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 ⑩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 · ⑪ 헤라클레이토스 · ⑫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헤라클레이토스 · ⑬ 크세노파네스 · ⑭ 파르메니데스 · ⑮ 제논의 역설 · ⑯ 엠페도클레스 · ⑰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 ⑱ 아낙사고라스 · ⑲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 다음 편: 파르메니데스 · 전체 목차

자주 묻는 질문

크세노파네스는 엘레아학파의 창시자인가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엘레아학파의 첫머리에 두었고, 파르메니데스가 그의 제자였다는 전승도 있다. 그러나 남은 단편에는 엘레아학파다운 존재 논증이 없고 그가 엘레아에서 가르쳤다는 증거도 약해, 학파의 선구자 정도로 보는 학자가 많다.

크세노파네스가 말한 소와 말의 비유는 무슨 뜻인가요?

소와 말과 사자가 그림을 그린다면 저마다 자기를 닮은 신을 그릴 것이라는 비유다. 에티오피아인과 트라키아인의 신이 다르게 생긴 것처럼, 사람이 그리는 신의 모습은 신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을 닮는다는 점을 꼬집는다.

크세노파네스는 회의주의자인가요?

그는 분명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없고 모든 것에 추측만 있다고 했다. 고대 회의주의자들은 그를 조상으로 모셨지만, 사람이 시간을 들여 더 나은 것을 찾아간다는 단편도 있어 많은 연구자는 확실성은 없되 더 나은 추측은 가능하다는 오류가능주의로 읽는다.

함께 읽을 책

  • 『서양철학사』 상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크세노파네스를 엘레아학파의 첫머리에 놓는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탈레스 외(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소와 말의 단편, 하나의 신, 추측에 관한 단편을 그리스어 원문과 함께 읽을 수 있다.
  • 『그리스 철학자 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전양범 옮김, 동서문화사): 9권에 크세노파네스의 생애와 저술, 그에 얽힌 일화가 실려 있다.

참고문헌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개정판),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 Xenophanes, DK 21 B2, B3, B7, B8, B11, B12, B14–B16, B18, B23–B27, B29, B32–B35, B38 (J. H. Lesher, Xenophanes of Colophon: Fragments, Toronto, 1992).
  • Hippolytus, Refutatio omnium haeresium I.14.5–6 (DK 21 A33).
  • Plato, Sophist 242c–d; Republic II, 377e–383c.
  • Aristotle, Metaphysics I.5, 986b18–27.
  •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IX.18–20.
  • Herodotus, Histories I.163–167.
  • Heraclitus, DK 22 B40.
  • Ludwig Feuerbach, Das Wesen des Christentums, 1841.
  • Karl Popper, The World of Parmenides, Routledge, 1998.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Xenophanes”
  •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Xenophanes”

필로렌즈 편집자
일상에 깃든 존재를, 조금 더 존재답게. 철학의 렌즈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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