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제논의 역설

제논의 역설: 아킬레우스와 거북, 날아가는 화살, 변증법 쉽게 정리

서양철학사 읽기 ⑮ 운동을 부정하는 증명과 변증법의 시작

발 빠른 아킬레우스가 느린 거북을 끝내 따라잡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따라잡는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말문이 막힌다. 제논의 역설은 바로 그 막힌 자리를 겨냥한 논증이다. 한 문장으로 답하면, 제논의 역설은 운동과 여럿이 있다고 가정하면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 주어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하나인 존재를 거꾸로 변호하려 한 귀류법이다.

앞 편 파르메니데스에서 우리는 생성도 운동도 여럿도 억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보았다. 상식은 이 결론을 비웃었다. 제논은 비웃음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 셋째 장의 마지막 항목이자 엘레아학파의 마지막 사람인 그를 따라가며, 생성과 존재를 다룬 이 장을 닫는다.

세 줄 요약

  • 제논은 상대의 가정을 무너뜨려 스승을 지켰다.
  • 네 역설은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귀류법이다.
  • 무한 분할과 연속체의 물음은 아직 남아 있다.

엘레아의 제논: 파르메니데스의 변호인

제논은 남이탈리아 서해안의 그리스 식민시 엘레아 사람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의 설정에 따르면, 그는 예순다섯 살쯤 된 파르메니데스와 함께 판아테나이아 축제 때 아테네에 왔다. 그때 그는 마흔 살 가까이 되었고, 그 자리에는 아주 젊은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학자들은 이 장면을 근거로 그가 기원전 490년 무렵에 태어났다고 본다.

같은 대화편에서 제논은 자기 책의 목적을 직접 밝힌다. 모든 것은 하나라는 스승의 말에서 우스운 결론이 줄줄이 나온다고 놀리는 이들이 있었다. 제논의 책은 그 놀림을 돌려준 것이다. 여럿이 있다는 그들의 가정을 끝까지 따라가면 더 우스운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127a–128e). 그는 젊은 날 논쟁을 좋아해 쓴 이 책을 누군가 허락 없이 베껴 퍼뜨렸다고 덧붙인다. 저작권이라는 말이 생기기 2천 년도 더 전의 무단 복제 신고다.

프로클로스에 따르면 그 책에는 마흔 개의 논증이 있었다. 남은 것은 열 개 안팎이고,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와 6세기 주석가 심플리키오스를 거쳐 전해진다. 우리는 제논을 그의 비판자들이 요약한 문장으로 읽는 셈이다.

문 두 개를 가리키며 젊은이들을 이끄는 엘레아의 제논을 그린 엘 에스코리알 도서관 천장 프레스코
젊은이들에게 참(VERITAS)과 거짓(FALSITAS)의 문을 가리키는 엘레아의 제논. 오른쪽 아래에 ZENON HELEATES라고 적혀 있다. 펠레그리노 티발디(또는 바르톨로메 카르두초), 스페인 엘 에스코리알 도서관 프레스코, 1588~1595년 무렵,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운동을 부정하는 증명: 네 개의 역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 6권 9장에서 제논이 운동을 부정한 논증 네 개를 소개하고 하나씩 반박한다(239b5–240a18). 내용은 이렇다.

이분법. 경기장 끝까지 달리려면 먼저 절반 지점에 가야 한다. 그다음에는 남은 거리의 절반, 다시 그 절반이다. 이 절반에는 끝이 없다. 끝없이 많은 지점을 유한한 시간 안에 다 지날 수는 없으니, 달리는 사람은 결승선에 닿지 못한다.

아킬레우스와 거북. 가장 빠른 자가 가장 느린 자를 쫓는다. 쫓는 자가 쫓기는 자의 출발점에 닿으면 거북은 조금 나아가 있고, 그 자리에 닿으면 또 조금 나아가 있다. 간격은 줄어들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이분법을 극적으로 꾸민 것으로 보았다.

날아가는 화살. 무엇이든 자기와 같은 크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멈춰 있다. 날아가는 화살도 어느 한순간에는 자기 크기만 한 자리를 차지한다. 시간이 그런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화살은 어느 순간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영화 필름을 한 칸씩 들여다보면 어느 칸에서도 공은 날아가지 않는다. 제논은 묻는다. 그렇다면 움직임은 어느 칸에 있었는가.

경기장. 같은 크기의 물체들이 세 줄로 늘어서 있다. 한 줄은 멈춰 있고, 나머지 두 줄은 같은 속도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물체는 멈춘 물체 하나를 지나는 동안 마주 오는 물체 둘을 지난다. 제논은 여기서 절반의 시간이 두 배의 시간과 같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역설 논증의 뼈대 기대고 있는 가정
이분법 절반을 먼저 지나야 한다 거리는 끝없이 나뉜다
아킬레우스 따라가면 또 앞서 있다 거리는 끝없이 나뉜다
화살 매 순간 제자리에 있다 시간은 순간들의 모임
경기장 절반 시간이 두 배 시간 더 나눌 수 없는 단위

표에서 보듯 앞의 둘은 끝없이 나뉘는 공간과 시간에서, 뒤의 둘은 더 나눌 수 없는 순간이나 단위에서 출발한다. 이 차이는 뒤에서 다시 중요해진다.

변증법: 상대의 가정에서 출발하는 기술

제논의 진짜 발명품은 거북이 아니라 논증의 형식이다. 그는 자기 주장을 증명하지 않는다. 상대의 가정을 받아들이고, 그 가정에서 모순을 끌어낸 다음, 그러니 가정이 틀렸다고 말한다. 이것이 귀류법(reductio ad absurdum)이다. 심플리키오스가 전하는 다수성 논증(DK 29 B1–B3)이 좋은 예다. 여럿이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것들은 있는 만큼만 있어야 하니 수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두 사물 사이에는 늘 다른 사물이 끼어 있으니 수는 끝이 없다. 같은 것들이 유한하면서 무한하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전하지 않는 대화편 『소피스테스』에서 제논을 변증법(dialektikē)의 창시자라 불렀다(VIII.57, IX.25).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같은 것을 하나로도 여럿으로도, 멈춘 것으로도 움직이는 것으로도 보이게 하는 엘레아의 팔라메데스를 말할 때도 고대인들은 제논을 떠올렸다(261d). 칭찬과 의심이 반씩 섞인 별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토피카』에서 제논의 논증 일부는 진리를 찾기보다 이기려는 쟁론에 가깝다고 꼬집었다(VIII.8, 160b7–9).

그래도 이 형식은 살아남았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따라가 그 말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소크라테스의 문답이 그 뒤를 이었고, 플라톤은 그것을 철학의 방법으로 다듬었다. 수학자들은 2의 제곱근이 분수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전히 이 방식으로 증명한다. 칸트의 이율배반도 이 집안의 먼 후손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제논이 참주를 몰아내려다 붙잡혀 참주의 귀를 물고 놓지 않았다거나 제 혀를 깨물어 뱉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IX.26–27). 운동을 부정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보다 재빠르게 움직인 셈이다.

제논의 전제조건들: 끝없이 나뉘는 공간과 시간

결론이 틀렸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어느 전제가 틀렸는지 집어내기가 어려울 뿐이다. 제논이 기대고 있는 전제를 꺼내 놓으면 대략 넷이다.

  • 공간과 시간은 연속이며 끝없이 나눌 수 있다.
  • 끝없이 많은 부분을 하나씩 다 지나는 일은 끝나지 않는다.
  • 끝없이 많은 크기를 더하면 그 합도 끝이 없다.
  • 시간은 더 나눌 수 없는 순간들의 모임이다.

첫째와 넷째는 서로 부딪친다. 여기서 해석이 갈린다. 일반적 해석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네 역설을 따로따로 읽는다. 그렇게 보면 경기장은 움직이는 것과 멈춘 것을 지나는 시간이 같다고 착각한, 상대 속도를 헷갈린 실수다.

다른 해석은 네 역설을 한 벌의 덫으로 읽는다. 공간과 시간이 끝없이 나뉜다고 하면 이분법과 아킬레우스에 걸린다. 더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가 있다고 하면 화살과 경기장에 걸린다. 경기장의 물체가 최소 시간 동안 물체 둘을 지난다면 하나만 지난 때, 곧 최소 시간의 절반이 있어야 하니 최소는 최소가 아니다. 경기장은 실수가 아니라 덫의 나머지 반쪽이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탄네리는 이 덫의 표적이 크기를 가진 점들로 사물을 짓던 피타고라스학파였다고 보았다. 다만 그런 학설의 기록이 제논보다 늦어서, 20세기 중반 이후 이 표적설을 의심하는 연구자가 많다.

제논의 역설은 풀렸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극한까지

첫 해결사는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먼저 『자연학』 6권 2장에서 길이만 끝없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똑같이 나뉜다고 지적했다(233a21–31). 그러나 8권 8장에서는 이 대답이 질문자를 물리칠 뿐 사태를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인정하고, 가능적 무한과 현실적 무한을 구별한다(263a4–b9). 길 위의 중간 지점들은 가능성으로만 무한히 있다. 지점마다 멈춰 서서 세면 그것들은 현실이 되고, 그때는 정말로 끝나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사람은 무한을 세지 않는다. 그저 지나갈 뿐이다.

근대 수학의 대답은 더 간단해 보인다. 아킬레우스가 거북보다 열 배 빠르고 거북이 10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고 하자. 아킬레우스가 따라가는 거리는 100미터, 10미터, 1미터, 0.1미터로 끝없이 이어지지만, 그 합은 111과 9분의 1미터라는 유한한 값에 다가간다. 그 지점에서 둘은 나란히 선다. 19세기에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의 극한, 칸토어의 무한집합이 이 말에 정확한 뜻을 주었다. 화살에 대해서는 러셀이 대답했다. 운동이란 서로 다른 시각에 서로 다른 자리에 있다는 것일 뿐, 한순간 안에 숨어 있는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at-at 이론이라 부른다.

누가 대답 남는 물음
아리스토텔레스 무한은 가능태로만 있다 현실적 무한은 정말 없나
근대 수학 무한급수의 합은 유한하다 합을 아는 것과 마치는 것
러셀 다른 때 다른 곳에 있음 순간의 속도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역설은 끝났는가. 수학자는 대체로 그렇다고 하고, 철학자는 대체로 아니라고 한다. 둘 다 자기 직업에 충실한 대답이다. 수학은 합이 얼마인지 알려 준다. 그러나 끝없이 많은 일을 하나하나 다 마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따로 남는다. 1954년 영국의 철학자 톰슨은 램프를 켜고 1분 뒤 끄고, 30초 뒤 다시 켜고, 15초 뒤 끄는 식으로 간격을 절반씩 줄이며 스위치를 끝없이 누르면 2분이 지났을 때 램프가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 물었다. 이른바 초과제(supertask) 논쟁이다. 수학은 여기에 답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규모에서 시공간이 연속이 아닐 수 있다는 물리학의 가설도 있다. 그렇다면 덫의 다른 쪽 반이 다시 열린다.

생성과 존재: 셋째 장을 닫으며

힐쉬베르거는 이 장에 생성과 존재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쪽 끝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있다. 모든 것은 흐르고, 그 흐름을 꿰는 것은 로고스다. 다른 쪽 끝에는 엘레아학파가 있다. 크세노파네스는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신을, 파르메니데스는 생성 없는 존재를 말했고, 제논은 상식에서 모순을 끌어내 그 결론을 지켰다.

둘은 감각이 보여 주는 세계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감각 너머의 로고스를, 파르메니데스는 감각 너머의 존재를 보았다. 그 뒤의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와 원자론자들은 변하지 않는 것 여럿이 모이고 흩어져 변하는 세계를 만든다는 방식으로 둘을 화해시키려 했다. 여럿을 다시 허락하려면 제논의 덫을 지나가야 했고, 원자론자들의 더 나눌 수 없는 원자를 그 대답으로 읽는 학자도 많다.

운동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 앞에서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가 말없이 일어나 걸어 다녔다는 일화가 있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VI.39). 통쾌하지만 반박은 아니다. 걷는 사람은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 어떻게 걸을 수 있는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제논이 남긴 것은 운동이 없다는 결론이 아니라, 우리가 운동과 무한을 말하는 언어가 생각보다 엉성하다는 발견이었다.

필로렌즈의 시선: 가장 익숙한 것의 수수께끼

제논의 역설이 오래 살아남은 까닭은 그것이 낯선 것이 아니라 가장 익숙한 것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걷는 일, 시간이 흐르는 일, 한순간이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는 일. 우리는 그것들을 날마다 살면서 한 번도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라는 요구를 받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그 막힘 앞에서 사람은 두 갈래로 나뉜다. 디오게네스처럼 일어나 걸어 버리거나, 제논처럼 그 막힌 자리를 오래 들여다보거나.

살아가려면 디오게네스가 필요하다. 사람은 걸음의 원리를 알아서 걷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각하려면 제논이 필요하다. 안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살아 냈을 뿐 알지는 못했던 것임을 깨닫는 순간, 경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이 시작된다. 그 감정은 불편하지만 정직하다. 그러니 한 번쯤 스스로 물어볼 만하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것, 이를테면 시간이나 나 자신 가운데, 설명하려 들면 말문이 막히는 것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읽기 · ① 신화란 무엇인가 · ②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 ③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 · ④ 미토스와 로고스 · ⑤ 탈레스 · ⑥ 아낙시만드로스 · ⑦ 아낙시메네스 · ⑧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학파 · 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 ⑩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 · ⑪ 헤라클레이토스 · ⑫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헤라클레이토스 · ⑬ 크세노파네스 · ⑭ 파르메니데스 · ⑮ 제논의 역설 · ⑯ 엠페도클레스 · ⑰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 ⑱ 아낙사고라스 · ⑲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 다음 편: 엠페도클레스 · 전체 목차

자주 묻는 질문

제논의 역설이란 무엇인가요?

기원전 5세기 엘레아의 제논이 만든 논증들로, 운동이나 여럿이 있다고 가정하면 모순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6권 9장이 전하는 이분법, 아킬레우스와 거북, 날아가는 화살, 경기장의 네 역설이 가장 유명하다. 목적은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하나인 존재를 귀류법으로 변호하는 데 있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역설은 어떻게 풀리나요?

수학적으로는 무한급수로 푼다. 아킬레우스가 열 배 빠르고 거북이 100미터 앞서 있으면 따라가는 거리 100, 10, 1, 0.1미터의 합은 111과 9분의 1미터로 유한하고, 그 지점에서 따라잡는다. 다만 끝없이 많은 단계를 다 마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철학의 물음으로 남는다.

제논은 정말 운동이 없다고 믿었나요?

플라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그의 목적은 여럿과 운동을 믿는 사람들의 가정이 파르메니데스의 학설보다 더 우스운 결론에 이른다는 것을 보이는 데 있었다. 그가 실제로 무엇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고,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함께 읽을 책

  • 『서양철학사』 상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제논을 운동을 부정하는 증명, 변증법, 그 전제조건의 세 갈래로 정리한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탈레스 외(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제논의 단편과 아리스토텔레스, 심플리키오스의 증언을 원문과 함께 읽을 수 있다.
  •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젊은 소크라테스가 제논의 책을 듣고 질문하는 도입부가 제논의 목적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기록이다.

참고문헌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개정판),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 Plato, Parmenides 127a–128e; Phaedrus 261d.
  • Aristotle, Physics VI.2, 233a21–31; VI.9, 239b5–240a18; VIII.8, 263a4–b9; Topics VIII.8, 160b7–9.
  • Simplicius, In Aristotelis Physicorum 139–141 (Zeno, DK 29 B1–B3).
  •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VI.39; VIII.57; IX.25–29.
  • Proclus, In Platonis Parmenidem 694; Sextus Empiricus, Adversus Mathematicos VII.7.
  • Bertrand Russell, The Principles of Mathematics, 1903, Part V, §446.
  • Paul Tannery, “Le concept scientifique du continu: Zénon d’Élée et Georg Cantor”, Revue philosophique 20, 1885.
  • J. F. Thomson, “Tasks and Super-Tasks”, Analysis 15, 1954; Adolf Grünbaum, Modern Science and Zeno’s Paradoxes, 1967.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Zeno’s Paradoxes”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Zeno of Elea”
  •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Zeno’s Paradoxes”

필로렌즈 편집자
일상에 깃든 존재를, 조금 더 존재답게. 철학의 렌즈로 담습니다.
소개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