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읽기 ⑪ 흐름과 대립, 영원회귀, 로고스
밀레토스 사람들은 세계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물었고, 피타고라스학파는 어떤 비율로 짜여 있는지 물었다.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질문을 바꾸었다. 세계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의 대답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그 변화는 하나의 법칙을 따른다.
앞 편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에서 수의 질서를 보았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의 셋째 장은 생성과 존재라는 제목 아래 두 갈래 길을 나란히 놓는다. 한쪽은 모든 것이 흐른다는 헤라클레이토스, 다른 쪽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엘레아학파다. 이 편은 그 첫 번째 길, 흐름과 대립과 영원회귀와 로고스를 따라간다.
세 줄 요약
-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를 끝없는 변화로 보았다.
- 대립하는 것들의 긴장이 곧 세계의 조화다.
- 변화를 다스리는 공통의 법칙이 로고스다.
어두운 사람,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는 소아시아 해안의 도시 에페소스 사람이고, 기원전 500년 무렵에 한창이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그는 왕족 집안에서 태어나 대대로 내려오던 왕의 칭호를 동생에게 넘겨주었고, 단 한 권의 책을 써서 아르테미스 신전에 바쳤다. 이런 일화는 대개 그의 성격을 설명하려고 후대가 지어낸 것이니 반쯤만 믿는 편이 좋다.
확실한 것은 그의 문체다. 그는 논증을 펼치지 않고 신탁처럼 짧게 말했다. 남은 것은 백여 개의 조각난 문장뿐이고, 그것도 대부분 다른 사람의 책에 인용된 형태로 전한다. 고대인들은 그를 어두운 사람이라 불렀고, 로마의 세네카 무렵에는 세상의 어리석음에 우는 철학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짝을 지어 그리는 것은 근세 화가들이 즐긴 소재였다.
그는 선배들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단편 40(DK 22 B40)에 따르면 많이 아는 것이 지혜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헤시오도스와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도 지혜로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수를 사랑한 크로톤 사람들은 이 에페소스 사람에게 박식한 수집가에 지나지 않았다. 철학사에서 동업자를 이렇게 대놓고 깎아내린 첫 사례일 것이다. 마지막 사례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만물은 흐른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있는가
헤라클레이토스 하면 사람들은 판타 레이(panta rhei), 곧 만물은 흐른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말은 남아 있는 그의 단편 어디에도 없다. 플라톤이 『크라튈로스』(402a)에서 그의 가르침을 모든 것은 움직이고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다는 뜻으로 요약했고, 이 두 낱말의 공식은 훨씬 뒤 기원후 6세기의 주석가 심플리키오스에게서 처음 보인다.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가운데 하나가 본인이 쓰지 않은 문장인 셈이다.
강물에 관한 말은 세 가지 판본으로 전한다. 단편 12는 같은 강물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물, 또 다른 물이 흘러온다고 말한다. 단편 91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 단편 49a는 우리가 같은 강물에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고 말한다. 뒤의 둘은 플루타르코스와 후대 저자의 책에 전하는데, 커크와 마르코비치 이후 많은 학자는 단편 12만을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로 본다.
어느 판본을 고르느냐에 따라 철학이 달라진다. 일반적 해석은 플라톤을 따른다. 모든 것이 쉼 없이 변하므로 같은 강, 같은 나도 엄밀히는 없다는 급진적 유동설이다. 플라톤은 바로 이 때문에 감각 세계에서는 참된 앎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변하지 않는 이데아를 찾아 나섰다. 다른 해석은 단편 12의 문법에 주목한다. 물이 바뀌어도 강은 같은 강으로 남는다. 아니, 물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강은 강으로 남는다. 고인 물은 강이 아니라 웅덩이다. 이렇게 읽으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변함으로써만 제 모습을 지킨다고 말한 것이 된다. 사람의 몸도 세포를 바꾸어 가며 같은 몸으로 산다.

대립의 통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같은 길
변화는 아무렇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변화는 언제나 한 쪽에서 그 반대쪽으로 간다. 차가운 것이 따뜻해지고, 젖은 것이 마르고, 산 것이 죽는다. 그래서 대립하는 것들은 서로 떨어진 두 사물이 아니라 한 과정의 두 끝이다. 그가 남긴 단편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이 생각을 여러 방향에서 비춘 짧은 그림들이다.
| 단편 | 대립하는 둘 | 하나인 까닭 |
|---|---|---|
| B60 |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 같은 하나의 길이다 |
| B61 |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 | 바닷물은 물고기를 살리고 사람을 해친다 |
| B88 | 삶과 죽음, 깸과 잠 | 하나가 바뀌어 다른 하나가 된다 |
| B111 | 병과 건강, 굶주림과 배부름 | 하나가 있어 다른 하나가 달다 |
| B103 | 처음과 끝 | 원 위에서는 같은 점이다 |
바닷물은 깨끗한가 더러운가. 물고기에게 물으면 깨끗하고 사람에게 물으면 더럽다. 같은 것이 관계에 따라 반대의 성질을 띤다. 이것이 상대주의로 빠지는지, 아니면 더 높은 통일을 가리키는지는 다음 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따져 볼 문제다.
대립은 갈등이기도 하다. 단편 53에 따르면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이고 모든 것의 왕이다. 단편 80은 다툼이 곧 정의라고 덧붙인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대립하는 것들이 서로에게 저지른 부정의를 시간의 질서에 따라 갚는다고 했다(아낙시만드로스 편).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생각을 뒤집는다. 다툼은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 세계가 유지되는 방식 자체다. 다툼이 사라지면 세계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조화는 어디에 있는가. 단편 51은 활과 리라를 예로 든다. 활시위와 활대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당기고, 그 팽팽한 긴장 덕분에 화살이 날아간다. 피타고라스학파에게 조화는 대립을 달래어 묶는 비율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조화는 대립 그 자체가 만드는 긴장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조화가 보이는 조화보다 낫다고도 했다(B54). 줄이 느슨한 리라는 평화롭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영원히 사는 불과 영원회귀
탈레스는 물을,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근원으로 삼았다(탈레스 편).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골랐다. 단편 30에 따르면 이 세계 질서는 어떤 신도 어떤 사람도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고, 정해진 만큼 타오르고 정해진 만큼 꺼지는 영원히 사는 불이다. 불은 바다가 되고, 바다의 반은 흙이 되고 반은 다시 불길이 된다(B31).
왜 하필 불인가. 물이나 공기는 가만히 있을 수 있지만 불은 그럴 수 없다. 불은 먹지 않으면 꺼지고, 타는 동안에는 쉬지 않고 무엇을 무엇으로 바꾼다. 불은 변화 그 자체의 모양이다. 단편 90은 이것을 시장의 언어로 말한다. 모든 것이 불과 바뀌고 불이 모든 것과 바뀌는 것은 물건이 금과 바뀌고 금이 물건과 바뀌는 것과 같다. 금은 무엇으로든 바뀌지만 그 값은 보존된다. 정해진 만큼이라는 단서가 중요하다. 흐름에는 장부가 있다.
여기서 힐쉬베르거가 영원회귀라 부른 문제가 생긴다. 스토아학파는 헤라클레이토스를 자기들의 선조로 모셨고, 그가 세계 전체가 주기적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난다고, 곧 세계 대화재(ekpyrosis)를 가르쳤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천체에 관하여』에서 그를 엠페도클레스와 함께 세계가 번갈아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본 사람으로 꼽는다. 후대의 학설지는 그에게 큰 해(great year)의 길이까지 붙여 전하는데, 사본마다 숫자가 다르다.
일반적 해석은 이 고대의 증언을 따라 헤라클레이토스에게 주기적인 소멸과 재생, 곧 영원회귀의 우주론이 있었다고 본다. 다른 해석은 단편 30 자체를 근거로 든다. 세계가 언제나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라면 통째로 타 없어질 수는 없다. 헤겔이 이미 이 모순을 지적했고, 커크를 비롯한 많은 현대 학자는 대화재가 스토아학파의 생각을 거꾸로 투사한 것이라 본다. 이 읽기에서 회귀는 세계 전체의 종말과 재생이 아니라, 불이 바다로 바다가 흙으로 흙이 다시 불로 끝없이 돌아가는 순환이다. 세계는 한 번에 타는 장작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화로다.
로고스: 모두에게 공통된 것
흐름과 대립과 불을 하나로 묶는 말이 로고스(logos)다. 그리스어 로고스는 말, 이야기, 셈, 비율, 이치를 두루 뜻한다. 그의 책 첫머리로 여겨지는 단편 1에 따르면 로고스는 언제나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듣기 전에도 들은 뒤에도 알아듣지 못한다. 모든 것이 로고스에 따라 일어나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로고스의 첫째 특징은 공통이라는 것이다. 단편 2에 따르면 로고스는 모두에게 공통된데도 많은 사람은 저마다 사사로운 생각을 가진 것처럼 산다. 그는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 세계가 있지만 잠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 세계로 돌아간다고도 했다(B89). 둘째 특징은 그것이 헤라클레이토스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편 50은 나에게가 아니라 로고스에게 귀를 기울인다면 모든 것이 하나임에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한다. 철학자는 진리의 주인이 아니라 그 진리를 먼저 들은 사람일 뿐이다. 겸손한 말이지만, 남들은 아직 못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니 아주 겸손하지는 않다.
로고스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자연은 숨기를 좋아하고(B123), 델포이의 신은 말하지도 감추지도 않고 다만 표시를 준다(B93).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탐구했다고 말한다(B101). 바깥 세계의 법칙과 안쪽 영혼의 깊이가 같은 로고스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 영혼의 끝은 아무리 걸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깊다는 생각(B45)은 이 사람을 단순한 자연학자 이상으로 만든다.
이 낱말의 후손은 놀랄 만큼 많다. 스토아학파는 로고스를 우주에 퍼진 이성으로 삼았고,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첫 문장에 같은 낱말을 썼다.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자신의 『논리학』에 받아들이지 않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변화 속에 법칙이 있다는 생각, 모순이 운동의 원리라는 생각은 이 어두운 에페소스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흐르고 대립하는 것이 하나라는 말은 곧 의심을 불렀다. 같은 것이 깨끗하면서 더럽다면, 한 사물이 동시에 있으면서 없을 수도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물음 앞에서 헤라클레이토스를 모순율의 적으로 지목했다. 그 재판은 다음 편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열린다. 그리고 바다 건너 엘레아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준비되고 있었다.
필로렌즈의 시선: 끝을 찾을 수 없는 방
헤라클레이토스는 자기 자신을 탐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혼의 끝은 아무리 걸어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깊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연이 숨기를 좋아한다면,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인 우리 마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방 몇 개만 오가며 그것을 나 자신이라 부르고, 나머지 문은 열어 보지도 않은 채 산다.
그는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 세계가 있지만 잠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 세계로 돌아간다고도 했다. 묘한 것은 자기 안으로 깊이 내려가는 일과 잠든 사람처럼 자기 세계에 갇히는 일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원한이나 두려움 속에 웅크린 마음은 좁은 방 하나에 머물 뿐 깊이 내려가지 않는다. 깊이 내려간 마음이 오히려 모두에게 공통된 것에 닿는다. 우리는 자기 영혼의 끝을 향해 걸어 본 적이 있는가, 늘 같은 방에서 잠들어 있었는가.
서양철학사 읽기 · ① 신화란 무엇인가 · ②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 ③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 · ④ 미토스와 로고스 · ⑤ 탈레스 · ⑥ 아낙시만드로스 · ⑦ 아낙시메네스 · ⑧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학파 · ⑨ 피타고라스적 생활양식 · ⑩ 피타고라스학파의 형이상학 · ⑪ 헤라클레이토스 · ⑫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헤라클레이토스 · ⑬ 크세노파네스 · ⑭ 파르메니데스 · ⑮ 제논의 역설 · ⑯ 엠페도클레스 · ⑰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 · ⑱ 아낙사고라스 · ⑲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 다음 편: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헤라클레이토스 · 전체 목차
자주 묻는 질문
판타 레이, 만물은 흐른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직접 한 말인가요?
아니다. 남아 있는 단편에는 이 말이 없다. 플라톤이 『크라튈로스』에서 그의 가르침을 그렇게 요약했고, 두 낱말의 공식은 기원후 6세기 주석가 심플리키오스에게서 처음 보인다.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말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같은 강물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늘 다른 물이 흘러온다는 단편 12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플라톤식으로 읽으면 모든 것이 쉼 없이 변하므로 같은 것은 없다는 뜻이다. 단편 12를 따르면 뜻이 조금 다르다. 물은 계속 바뀌지만 그렇게 바뀌기 때문에 강은 같은 강으로 남는다. 변화와 동일성이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떠받친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는 무엇인가요?
변화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공통의 법칙이자 이치다. 그에 따르면 로고스는 모두에게 공통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저마다의 생각에 갇혀 산다. 이 개념은 스토아학파의 세계 이성, 요한복음의 말씀, 헤겔의 논리학으로 이어졌다.
함께 읽을 책
- 『서양철학사』 상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흐름, 대립, 영원회귀, 로고스의 네 갈래로 정리한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탈레스 외(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을 그리스어 원문과 함께 읽을 수 있다. 짧은 문장 하나를 오래 붙들고 있기 좋은 책이다.
- 『크라튈로스』, 플라톤: 만물은 흐른다는 요약이 처음 나오는 대화편. 헤라클레이토스가 어떻게 읽혀 왔는지 알려면 이 오독의 출발점을 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상권(개정판), 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 탈레스 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 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2005.
- Heraclitus, frr. DK 22 B1, B2, B12, B30, B31, B40, B45, B49a, B50, B51, B53, B54, B60, B61, B80, B88, B89, B90, B91, B93, B101, B103, B111, B123 (H. Diels & W. Kranz,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6th ed., 1951).
- Plato, Cratylus 402a; Aristotle, On the Heavens I.10, 279b12–17.
- Diogenes Laertius,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IX.1–17; Simplicius, In Aristotelis Physicorum 1313.11.
- G. S. Kirk, Heraclitus: The Cosmic Fragments, Cambridge, 1954; M. Marcovich, Heraclitus, Mérida, 1967; C. H. Kahn, The Art and Thought of Heraclitus, Cambridge, 1979.
- G. W. 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I, Heraklit.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eraclitus”
-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 “Heraclit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