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사 읽기 ④ 빛과 형상, 내면의 조각가
그리스 미학은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부분들의 알맞은 비례라고 말해 왔다. 3세기 로마에서 한 사람이 그 정의에 정면으로 이의를 걸었다. 플로티누스, 그리스어 이름으로는 플로티노스다. 플로티노스에게 아름다움은 부분의 비례가 아니라 형상이 질료를 비추어 하나로 묶을 때 드러나는 빛이다. 이 한 문장이 고대 미학의 마지막 장이자 중세 미학의 첫 장이 되었다.
역설은 그의 삶에서 시작한다. 제자 포르퓌리오스가 쓴 전기에 따르면 그는 몸 안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처럼 살았고 초상을 그리게 해 달라는 부탁을 끝내 거절했다. 자연이 씌워 준 이 모상 하나를 끌고 다니는 것도 버거운데 모상의 모상까지 남겨야 하느냐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제자들은 이름난 화가를 강의에 몰래 데려와 기억으로 얼굴을 그리게 했다. 모상을 그토록 꺼린 사람이 서양 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철학자였다. 플라톤의 예술이해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지나 『미학대계』 제1권 고대 편의 마지막 글, 플로티누스의 미 개념에 이르렀다.
세 줄 요약
- 아름다움은 비례가 아니라 형상의 빛이다.
- 영혼은 닮은 것이라서 아름다움을 알아본다.
- 예술은 자연이 따르는 원리로 거슬러 오른다.
플로티노스와 『엔네아데스』: 하나에서 흘러나온 세계
플로티노스는 204년이나 205년 무렵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스물여덟 살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암모니오스 삭카스를 만나 열한 해 동안 배웠고, 페르시아와 인도의 지혜를 배우겠다며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원정군을 따라나섰다가 황제가 죽자 간신히 빠져나왔다. 244년 로마에 자리 잡아 스물다섯 해 넘게 가르쳤고 270년 캄파니아에서 죽었다. 그는 쉰 살 가까이 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포르퓌리오스는 스승이 남긴 논고 쉰네 편을 주제에 따라 아홉 편씩 여섯 묶음으로 엮었다. 그리스어로 아홉을 뜻하는 말에서 온 『엔네아데스』가 그것이다. 이 묶음에서 첫째 권 여섯째 논고, 곧 I.6 「아름다움에 관하여」는 포르퓌리오스가 전하는 집필 순서로는 그가 쓴 첫 글이다. 아름다움은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었다.
그의 세계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맨 위에는 어떤 이름도 모자란 하나, 곧 일자(헨)가 있다. 플로티노스 자신이 V.1.8에서 밝히듯 파르메니데스가 있는 것은 하나라고 했던 그 하나의 먼 후손이다. 일자는 무엇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태양이 애쓰지 않아도 빛을 내듯 넘쳐흐를 뿐이다. 그 넘침에서 정신(누스)이 나오고 정신에서 영혼이 나온다. 영혼이 맨 끝에서 만나는 것이 질료다. 질료는 아무 성질도 없는 것, 거의 있지 않음에 가까운 것이다.
| 층위 | 무엇인가 | 아름다움과의 관계 |
|---|---|---|
| 일자 | 모든 것의 근원, 나눌 수 없는 하나 | 아름다움 너머의 원천 |
| 정신 | 형상들이 함께 있는 앎의 세계 | 아름다움 그 자체 |
| 영혼 | 정신을 받아 물체 세계를 꾸밈 |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옮김 |
| 질료 | 형상이 없는 밑바탕 | 형상을 못 받으면 추함 |
비례설 비판: 번개는 왜 아름다운가
I.6의 첫 장에서 플로티노스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던 정의를 불러낸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부분들이 서로와 전체에 대해 알맞은 비례를 이루고 거기에 좋은 빛깔이 더해진 것이라는 정의다. 스토아학파가 다듬었고 키케로도 거의 같은 말을 남겼다. 폴뤼클레이토스의 조각에서 파르테논의 기둥까지 그리스 예술의 큰 줄기가 이 정의 위에 서 있었다. 플로티노스는 이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대신 모자라다고 말한다. 반박은 네 갈래다.
첫째, 부분이 없는 것은 비례를 가질 수 없다. 그런데 빛깔과 햇빛과 황금, 밤하늘의 번개와 별, 단 하나의 음은 아름답다. 비례설이 옳다면 이것들은 아름다울 수 없다. 둘째, 전체만 비례 덕에 아름답고 부분 하나하나는 아름답지 않다면 추한 것들을 모아 아름다운 것을 만든 셈이 된다. 플로티노스는 그럴 리 없다고 본다. 셋째, 같은 얼굴이 비례는 그대로인데 어떤 때는 아름답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다. 다른 논고(VI.7.22)에서 그는 더 날카롭게 묻는다. 죽은 얼굴도 비례는 살아 있을 때와 같은데 왜 아름다움은 살아 있는 얼굴에만 남는가. 넷째, 아름다운 법과 학문과 덕에도 아름답다는 말을 쓴다. 덕의 비례란 대체 무엇인가.
| 물음 | 비례설 | 플로티노스 |
|---|---|---|
| 무엇이 아름다운가 | 부분이 여럿인 전체 | 단순한 빛과 색도 아름답다 |
| 아름다움의 원인 | 부분 사이의 알맞은 비례 | 형상에 참여하는 것 |
| 죽은 얼굴 | 비례가 같으니 똑같이 아름다움 | 생명이 빠져 아름다움이 옅어짐 |
| 덕과 학문 | 설명하기 어려움 | 감각 너머의 더 높은 아름다움 |
비례는 아름다움의 원인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VI.7.22에서 이것을 한 줄로 줄인다. 아름다움은 비례 그 자체라기보다 비례 위에 비추는 무엇이다.
형상이 질료를 이길 때: 참여와 친화
그러면 무엇이 물체를 아름답게 하는가. I.6.2의 대답은 플라톤의 언어로 되어 있다. 아름다운 것은 형상(에이도스)에 참여함으로써 아름답다. 형상이 없는 질료가 형상을 받아 여러 부분이 하나로 묶일 때 그것은 아름다워진다. 반대로 추함은 형상이 질료를 다 다스리지 못한 상태다. 추함은 무엇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무엇이 모자란 것이다.
불이 아름다운 까닭도 여기서 나온다. I.6.3에 따르면 불은 물체 가운데 가장 형상에 가깝고 가장 가벼워 위로 오르며 다른 것들에 빛깔을 준다. 그래서 불과 빛은 부분이 없어도 아름답다. 플로티노스의 미학이 빛의 미학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방식이다. 영혼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마치 오래전에 알던 것을 다시 만난 듯 반가워하고 끌려간다. 추한 것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돌아선다.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이것은 영혼이 본래 형상의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것은 같은 것끼리의 알아봄이다. 판단이 따지기 전에 영혼이 먼저 고향의 냄새를 맡는다.
내면의 조각가: 아름다움으로 오르는 길
I.6의 후반부는 미학에서 윤리로, 다시 신비로 오른다. 감각의 아름다움 위에 행실과 학문과 덕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것은 감각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만 보인다. 영혼이 추해지는 것은 몸과 질료에 진흙처럼 들러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덕은 깨끗이 씻어 내는 일이다. 플로티노스는 오뒤세우스가 키르케와 칼륍소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듯 사랑하는 조국으로 떠나자고 말한다. 그러나 이 여행은 발로 가는 것도 배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니다. 눈을 감고 다른 눈을 뜨는 일이다.
그다음에 이 글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I.6.9). 자기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아직 아름답지 않다면 조각가처럼 하라. 조각가는 남는 것을 깎아 내고 굽은 것을 펴고 흐린 것을 밝혀 마침내 상을 빛나게 한다. 그렇게 자기 상을 다듬기를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플로티노스에게 아름다움을 보는 일과 아름다워지는 일은 같은 일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해를 닮지 않은 눈은 해를 볼 수 없고, 스스로 아름다워지지 않은 영혼은 첫째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플라톤 『향연』에서 디오티마가 그린 사랑의 사다리가 여기서 자기 수양의 사다리가 된다.
페이디아스의 제우스: 예술은 자연을 베끼지 않는다
예술에 관한 플로티노스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V.8 「예지적 아름다움에 관하여」의 첫 장에 있다. 돌덩이 둘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손대지 않은 돌이고 다른 하나는 조각가가 신이나 사람의 상으로 깎은 돌이다. 둘째 돌이 아름다운 것은 돌이어서가 아니다. 예술이 넣어 준 형상 때문이다. 그 형상은 돌에 들어가기 전에 조각가 안에 있었고, 돌로 나아가면서 오히려 조금 흐려졌다. 퍼져 나가는 것은 무엇이든 처음보다 약해진다.
그리고 그는 플라톤에게 정중하게 반대한다.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고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 자체도 모방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베끼지 않는다. 자연이 거기서 나온 원리(로고스)로 거슬러 올라가며, 자연이 모자란 곳을 스스로 채운다. 그 증거가 페이디아스다. 그는 올림피아의 제우스를 감각의 어떤 본보기를 보고 만들지 않았다. 제우스가 사람의 눈에 보이기로 한다면 어떤 모습을 할지를 알아보고 만들었다. 플라톤에게 화가는 실재에서 세 단계 떨어진 모방자였다. 플로티노스에게 예술가는 자연보다 한 단계 위, 자연이 따르는 원리 쪽에 선다.
일반적 해석은 여기서 예술의 지위가 뒤집혔다고 본다.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이데아』(1924)에서 르네상스 예술론이 예술가 안의 이데아를 말할 때 이 대목이 그 원천의 하나였다고 추적했다. 천재의 내면이 작품의 근원이라는 낭만주의의 생각도 멀리 보면 이 언저리에서 나온다. 다른 해석은 신중하다. 같은 대목에서 플로티노스는 돌 속의 아름다움이 예술가 안의 형상보다 못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예술은 정신으로 오르는 사다리의 한 칸일 뿐 그 끝이 아니다. 그가 높인 것은 작품이라기보다 작품 이전의 형상이었다는 것이다. 초상을 거절한 철학자다운 높임이다.

신플라톤주의 미학이 남긴 것
플로티노스는 고대 미학의 마지막 인물이자 중세 미학의 숨은 출발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7권에서 라틴어로 옮겨진 플라톤주의자들의 책을 읽고 자기 내면으로 돌아섰다고 적는다. 그 책들 가운데 플로티노스가 있었다는 데 연구자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 무렵 아레오파고스의 디오뉘시오스라는 이름을 빌려 글을 남긴 저자는 『신명론』 4장에서 아름다움을 신의 이름으로 불렀다. 빛과 하나와 형상으로 아름다움을 말하는 중세의 언어는 이 길을 따라 내려왔다. 1492년 피렌체에서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라틴어 번역이 인쇄되자 플로티노스는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서재로 들어갔다.
고대 편 네 글을 돌아보면 길 하나가 보인다. 그리스 미학은 비례와 조화에서 출발했고, 플라톤은 예술의 모방을 의심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에서 앎과 즐거움과 정화를 찾았다. 플로티노스는 비례를 빛으로, 모방을 원리로의 귀환으로 바꾸어 놓았다. 아름다움은 이제 눈앞의 물건에서 영혼의 내면과 그 너머로 옮겨 갔다. 중세는 이 빛을 신의 이름으로 다시 읽는다. 다음 편은 중세 미학사상의 흐름이다.
필로렌즈의 시선: 아름다움에 섞인 그리움
아름다운 것 앞에서 사람은 기쁨만 느끼지 않는다. 묘하게 그리움 같은 것이 섞인다. 처음 보는 풍경인데 오래전에 알던 곳 같고, 처음 듣는 선율인데 어디선가 돌아온 소리 같다. 플로티노스는 이 느낌에 이유를 댔다. 영혼은 본래 형상의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을 보면 고향을 알아보듯 반가워한다는 것이다. 그 형이상학을 다 받아들이지 않아도 관찰은 남는다. 아름다움 앞의 떨림에는 무엇을 잃어버렸다는 느낌과 무엇을 되찾았다는 느낌이 함께 들어 있다.
내면의 조각가라는 비유는 그 그리움에 방향을 준다. 조각가는 돌에 무엇을 붙이지 않는다. 남는 것을 깎아 내고 흐린 것을 밝힌다. 플로티노스에게 추함은 무엇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모자란 것이었고, 모자란 것은 흩어진 것을 하나로 묶는 형상이었다. 그렇다면 아름다워지는 일은 더 많은 것을 갖추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안에 흩어진 것을 덜어 내며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해를 닮지 않은 눈은 해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끝내 알아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것은 대상이 모자라서일까, 우리의 눈이 아직 다 깎이지 않아서일까.
미학사 읽기 · ① 서양 고대미학의 흐름 · ② 플라톤의 예술이해 · ③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 ④ 플로티누스의 미 개념 · 다음 편: 중세 미학사상의 흐름(준비 중) · 전체 목차
자주 묻는 질문
플로티노스는 아름다움을 무엇이라고 보았나요?
『엔네아데스』 I.6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부분의 비례가 아니라 형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형상이 질료를 다스려 하나로 묶을 때 물체가 아름다워지고, 영혼은 자기와 닮은 그 형상을 알아보고 끌린다. 감각의 아름다움 위에는 덕과 정신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너머에 일자, 곧 선이 있다.
플로티누스와 플로티노스는 같은 사람인가요?
같은 사람이다. 플로티노스는 그리스어 이름이고 플로티누스는 라틴어식 표기다. 『미학대계』처럼 라틴어식을 쓰는 책도 있고 철학 번역서처럼 그리스어식을 쓰는 책도 있다.
플로티노스는 예술을 플라톤보다 높이 평가했나요?
V.8.1에서 그는 예술이 보이는 것을 베끼지 않고 자연이 따르는 원리로 거슬러 오른다고 말하며 페이디아스의 제우스를 예로 든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모방 비판을 고쳐 쓴 것은 분명하다. 다만 작품 속 아름다움은 예술가 안의 형상보다 못하다고 보았으므로 예술 작품 자체를 최고의 자리에 둔 것은 아니다.
함께 읽을 책
- 『미학대계 제1권: 미학의 역사』, 미학대계간행회 엮음(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이 연재가 따라가는 목차의 원본. 고대 편 마지막 글이 이순아의 「플로티누스의 미 개념」이다.
-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 선집』, 플로티노스(조규홍 옮김, 누멘): 「아름다움에 관하여」를 비롯한 주요 논고를 우리말로 읽을 수 있다.
- 『플로티노스 엔네아데스 입문』, 도미니크 J. 오미라(안수철 옮김, 탐구사): 일자, 정신, 영혼의 구조와 아름다움에 관한 논고를 차근차근 풀어 준다.
참고문헌
- 이순아, 「플로티누스의 미 개념」, 미학대계간행회 엮음, 『미학대계 제1권: 미학의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 Plotinus, Enneads I.6 (On Beauty), V.8 (On the Intelligible Beauty) 1, V.1.8, VI.7.22, trans. A. H. Armstrong, Loeb Classical Library, Harvard; trans. S. MacKenna.
- Porphyry, On the Life of Plotinus and the Order of His Books 1–4.
- Cicero, Tusculan Disputations IV.31.
- Plato, Republic X, 595a–598d; Symposium 210a–212a.
- Augustine, Confessions VII.9–10; Pseudo-Dionysius, The Divine Names IV.
- Erwin Panofsky, Idea: Ein Beitrag zur Begriffsgeschichte der älteren Kunsttheorie, 1924.
- 플로티노스,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 선집』, 조규홍 옮김, 누멘, 2009.
- 도미니크 J. 오미라, 『플로티노스 엔네아데스 입문』, 안수철 옮김, 탐구사, 2009.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Plotinus”
